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게스트하우스에서 1차를 끝내고 대구 동생들과 고깃집에 갔다. 이 사실은 당일에 알지 못했다. 아침에 정신 차린 뒤, 사진첩에 저장된 2장의 사진을 보고 알았다.
“우리 고깃집도 갔어?”
“이 사진 뭐지?”
해장까지 같이 하기로 했다는 기억만이 유일했다. 복어집으로 가서 해장했다. 통영에서 유명한 집이란다. 여기서 끝내긴 내심 아쉬웠다. 어제 기억은 강렬히 남아 알몸을 서슴없이 공유할 정도였다. 뜨거운 욕탕에서 남은 알코올 찌꺼기를 배출했다. 그리고 처음 만난 깔끔한 상태로 헤어졌다. 다음이 없을 거란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다음에 또 보자며 기약 없는 안녕을 고했다. 통영에 다시 왔을 때,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되새김할 수 있는 인연 혹은 추억만으로 충분했다.
'블루' 크리스마스였다. 통영 곳곳을 바다와 함께 했다. 서피랑에 올라서도, 동피랑에 올라서도, 이순신 공원을 거닐 때도 파란색이 보였다. 그것을 볼 때면 강렬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자유에 대한 원대한 꿈이었다. 걷기는 내게 자유를 줬다. 어디로 갈 건지, 어떻게 갈 건지 모든 것이 선택에 달렸다. 길을 잘못 들어도, 길을 잃어도 괜찮았다. 선택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면 된다. 참으로 간단하다.
보통 ‘어려움’을 느낄 땐 복잡했다. 여행 갈 때 날씨와 교통 혹은 식사 같은 부수적인 것을 고민한다. 그럼 생각하는데 에너지를 다 쓴 바람에 떠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메뉴가 다양한 가게에 들어서면 어떤가, 최고의 선택을 한답시고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선택장애가 된다. 그리고 어렵사리 시킨 메뉴는 아쉽다. ‘아, 저걸 시킬걸’이라며 후회가 가득하다. 삶은 간단하다. 살다가 죽는다. 과정이 어떻든 죽는다. 그렇다면 조금 가벼이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가기로 결정하면 가자. 행동해야 결과가 다가온다. 메뉴가 많을 땐 빠르게 ‘코카콜라 맛있다’ 같은 주문을 써보자. 다른 메뉴는 생각조차 안 했으니, 앞에 놓인 음식이 가장 맛있다. 완벽하려다 보니 복잡해진다. 사는 게 어려워진다. 주어진 대로 살아도 살아진다. 복잡할 땐 일단 ‘고(GO)’하자!
연말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며, 누군가는 올해를 돌아볼 것이며, 누군가는 새해 계획을 세울 것이다. 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길을 걷는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위해 퇴사했다. '나'를 찾기 위해 전국일주를 선택했다. 하루하루 기록한다. 참으로 멋진 일이지 않는가. 자유로웠다. 이 여정 끝에 나는 무엇이 될까.
자유를 품은 여행가가 되어있을까?
지금은 행복한 상태 그대로 두기로 했다. 미래는 찬란했고, 그럴 거란 강렬한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를 소망했다. 신이든 무엇이든 그대로 이루어지길 도와달라고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