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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06 당진->아산 29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어제 기도가 닿았는지 하늘은 맑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에게 오늘은 최고의 날이었다. 삽교호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삽교호를 대표하는 관람차가 보였다. 놀이공원은 공사 중이었지만, 바이킹은 운행되는 아주 신기한 광경이었다. 해산물로 가득한 이곳엔 관련 가게들이 줄줄이 서있다. 해남으로 향했던 가을이 떠올랐다. 가로등 빛에 기대어 벤치에 앉아 먹었던 광어회 한 접시. 딱딱하게 얼어가는 회를 씹어가며, 마셨던 캔맥주. 외로움을 삼키며 맞았던 가을바람은 여전히 몸속에 고스란히 남았다.


바다가 보이는 공원으로 향했다. 푸른 하늘과 바다. 나는 저 푸른 것들과 같아지려 했다. 새로 구매한 삼각대를 꺼냈다. 작은 직사각형 안에 하늘과 바다, 나를 꾸겨 넣었다. 이전 삼각대가 박살 나서 새로운 것을 구매했는데, 매우 불편했다. 허리를 많이 숙여야 했다. 그렇게 낑낑대며,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저것들과 같아지려는 마음은 욕심이었다. 커플이 지나갔다.


"어디까지 가세요?"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었다. 집으로 향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기간을 물었다.


"100일 넘었어요"

"어디서부터 출발하신 거예요?"

"아, 한반도 한 바퀴를 도는 중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는지 두 사람은 토끼 눈이 되어 놀라워했다. 여성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응원을 하곤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하나와 둘. 꾀죄죄함과 깔끔함. 보면 볼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쳇, 그래도 난 내 맘대로 살 수 있다고’ 책임에 사로잡힌 두 사람을 가엾게 바라보는 것으로 내가 이겼다. 어휴, 언제 철들래.


사진을 대충 찍고 벤치에 앉았다. 연양갱을 베어 물었다. 단맛이 입안 가득 돌았다.


“역시 단것이 몸에 들어가야 한다니깐”


벌써 늙었나? 바다를 멍하니 쳐다봤다. 5분 남짓이었다. 정비를 하고 다시 출발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던 길인 줄 알았으나, 길을 착각했다. 그 길은 평택호에서 아산호로 가는 길이었다. 아쉬웠지만, 이 길도 나쁘지 않았다. 거대한 돌길이 일직선으로 나 있었다. 바다도 도로도 모든 게 내 발아래에 있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양 옆에 푸른색이 넘실거렸다. 2020년에는 일몰을 바라보며 걸었는데, 오늘은 밝은 하늘 아래서 걸었다. 이어폰을 꼈다. 통통 튀는 비트에 맞춰 손가락을 튕겼다.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몸을 흐느적거리기도,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저 지나가는 운전자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뭔들 어떠하리.


돌길에서 내려왔다. 이제 바다와는 잠시 안녕이었다. 내일부터 도시로 향한다. 집과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약간 전역을 앞둔 병장 기분이랄까. 나가면 무엇을 할지 행복한 고민을 했던 그때와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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