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복지사로서 행복했다. 배울 것이 많았고 적응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는 시간조차 내겐 달콤한 휴식이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부서 이동을 했다. 이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일의 반복은 생각을 멈추게 했다. 무언가 해보려는 발버둥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무언가 더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좌절했다. 결국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힘들게 발버둥을 쳤을까’라는 이유로 변화를 포기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정규직이란 참 무서운 놈이었다. 사람을 점점 바보로 만들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복지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죄책감이 심해졌다. 주민들에게 듣는 감사한다는 말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듣기 무서웠다. 나에겐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었다. 초라했다. 우는 날이 하루하루 늘어갔다. 그래서 도망치기로 했다.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두 개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데미안’과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였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떠맡겨진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자유로우며 스스로 선택한 이상이어야 한다고, 일상에 얽매이지 말고 실제로 일어나게 하라고 말했다. 도망침에 근사한 이유를 만들어줬다. 큰 위로와 함께 나아갈 힘을 얻었다.
뭔가를 간절히 원해서 발견한 것이라면, 그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그의 필사적인 소원이 필연적으로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데미안>
퇴사는 필연적이었다.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 현실은 숨 막혔다. 숨을 쉬고 싶었다. 자유가 필요했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길은 방황할 때마다 명쾌한 답을 내려줬다. 군대를 전역하고 변하지 못해 자책했을 때도, 인턴기간이 끝나고 고민할 때도 길은 깨달음을 주었다. 이번 전국일주도 그랬다. 나의 삶은 전국일주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삶이란 노를 힘차게 젓다가, 더 이상 젓지 못하게 되었을 때, 당당히 죽음이란 거대한 파도에 내맡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찬란한 인생이었노라
내가 봐도 창피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적었다(사실 이걸 적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 많았다. 지금보니 너무 창피한 글들이 많았다). 이것은 아홉수가 퇴사하고 길로 도망친 120일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