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삿갓 Jun 04. 2024

EP.01 군포->성수 30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눈만 뜨면 밖에 나가자고 그렇게 울어댔다니까”


부모님과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나오는 말이었다. 시간은 상관 없었다고 한다. 눈 뜬 시간이 새벽이어도 나가야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기억력이 어찌나 좋았는지 이전에 가봤던 길이면 다시 울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어머니는 유모차를 끌고 방학동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다(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방학동에 살았다). 안 가본 골목 찾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신기하게 지금도 가봤던 길은 꺼린다. 풍경이 조금이라도 바뀌어야 간다. 운명을 믿지 않지만, 이 정도면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는지 싶었다.


어젯밤에 짐을 미리 싸고, 기대되어서 잠도 오지 않았다. 아침이 오기만을 바랬다. 전국일주는 처음이라 두근거렸다. 장장 4개월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국토종주였다.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침 7시, 집을 나섰다. 두근거림으로 가득 찬 기분과 다르게 바깥은 안개가 껴 회색빛이 돌았다. 익숙한 공원을 지나고, 익숙한 건물들을 지났다. 익숙한 풍경들로 가득 찬 길을 걸었다. 4개월 후에나 볼 수 있는 고향에 작별을 고했다. “드디어 떠난다, 빨리 그립지만 않았음 좋겠네. 나중에 다시 보자”. 시간이 흐르고 햇빛이 안개를 지웠다. 안개로 시작했지만 빛을 되찾은 날씨는 긴 여행의 끝을 미리 보여주는 듯했다. 날씨처럼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걱정됐다.


키의 2/3를 차지하는 배낭을 짊어졌다.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무게일까,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사람은 포기할 때 수많은 이유를 대며 자기합리화 하는데 나라고 해당하지 않는 법이 없었다. 사람을 돕고 싶어 사회복지사가 되었지만 주체적으로 일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만뒀다. 국토종주를 하며 모금활동을 하고, 여러 프로젝트도 진행했지만 반응이 없다는 이유로 그만뒀다. 전국일주는 현실로부터 도망쳤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연막이었을까. 그래서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고 싶다’라는 거창한 목적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을까. 주위에선 나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보던데 이 정도면 아주 성공적인 도망이라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배낭은 진실을 말하라고 계속해서 어깨를 짓눌렀다.


기나긴 진실 공방 속에 쉽사리 결론내리지 못하고 포기했다. 눈앞에 펼쳐진 자유를 만끽하기도 아까운 시간에 도망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제야 풍경이 보였다. 가을이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금빛처럼 빛나던 여름과 달리 저마다 제 색깔을 뽐냈다. 은행은 노란색, 단풍은 붉은색, 나무는 고동색…. 마음이 안정됐다. 조급할 필요 없었다. 길은 언제나 내게 답을 알려주었다. 스스로 변하고 싶어 떠났던 2017년 국토종주 때,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떠났던 2020년 국토종주 때도 길 위에서 답을 구했고 성장했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것이다.

이전 01화 EP.00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