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삿갓 Jul 01. 2024

EP.05 양평 12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어젯밤이었다. 시골길을 걸을 때 긴장을 많이 했나 보다. 몸이 으슬으슬하니 열이 느껴졌다. 몸살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자고 나니 멀쩡했다. 오늘은 짧은 코스로 여유 있게 걸었다. 북한강을 따라 걸었다. 햇빛에 비친 물결은 홀로그램처럼 결마다 다른 색깔로 빛났다. 앞만 보고 걷다 강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강물 위에 놓여있는 낙엽이 눈에 띄었다. ‘저 낙엽은 강물 위에 떨어지고 싶어 떨어졌을까?’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갈 수 없는 상태였다. 낙엽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자포자기 심정으로 강물에 모든 것을 내맡겼을까? 아니면 불가항력의 힘에 대항하려 했을까. 삶이라는 강물 위에 놓인 낙엽은 나였다. 삶이나 강물을 내 통제 아래 두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인간을 넘어 신의 영역임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께 기도드리는 일뿐이었다.


“낙엽이 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든 본래 가야 할 곳, 땅 위에 안착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저도 세상에서 가야 할 곳에 도착하지 않겠습니까.”


강줄기는 좁아진 물길을 따라 흐르며 계곡이 되었다. 도장계곡으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시끄러운 차 소리도 이제는 가끔 들렸다. 사람도, 차도 거의 없었다. 귓가에 맴도는 건 지저귀는 새들의 대화요, 나무가 서로의 몸을 비비며 춤추고, 계곡은 그 모습이 부끄러워 빠르게 도망쳤다. 걷기가 좋지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힘들 때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수십 번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이 다시금 걷게 했다. 도시와는 다른 자연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도시 속 자연은 머리도 하고 화장도 하고, 멋들어진 옷을 입고 ‘예쁘죠?’하는 느낌이다. 내가 보는 자연은 가공되어서가 아니라 자체로 이뻤다. 꾸밈없이 수수한 그런 느낌처럼.


도장계곡 야영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노지 캠프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늦가을이라 추울 법도 한데 곳곳에 설치된 텐트가 많았다. 일찍부터 저녁 준비를 하는 사람, 늦은 점심을 먹고서 불멍하는 사람 등 각자 방식으로 캠핑을 즐겼다. 이리저리 한참 돌아다니다 홀로 캠핑하는 자리 옆에 텐트를 설치했다. 하필 고른 곳이 돌이 많은 땅이라 설치하는 데 애먹었다(땅에 박혀야 하는 건 팩인데 한숨이 더 박힌다, 언제 초보 딱지를 뗄런지). 다음으로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하고,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와 오징어를 꺼냈다. 오늘 저녁은 즉석식품, 비가열 식품이다. 조리할 수 없는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음식이었다. 산과 다르게 바람이 불지 않아 따뜻했다. 드디어 여유로운 낭만을 즐겼다. ‘딱!’ 경쾌한 소리가 귀를 건드렸다.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캬아~ 이 맛이지!” 자연 냉장된 맥주의 시원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눈을 크게 찡그렸다 뜨며 ‘와~!’ 한마디면 끝났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삼겹살이었다. 애써 부럽지 않은 척했지만, 눈은 삼겹살 쪽을 흘깃거렸다.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봤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나의 안줏거리였다. 별들을 점처럼 이어 삼겹살을 그려봤다. 낭만 있는 방랑자에게 요리는 사치일 뿐, 그저 자연만 있다면 배고프지 않지만, 휴대전화로  조립식 미니 화로를 검색했다. 마침 내일 이동하는 길에 캠핑용품점이 있었다. 미니 화로에 불판을 올리고 소시지와 고기를 굽는 상상을 해보았다(자연도 좋지만, 소시지와 고기를 구워 먹는 방랑자가 더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아래에서 신호가 왔다. 화장실은 이용하기가 꺼려졌다. 야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 있는 화장실을 확인했는데 오랫동안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바로 앞에 펜션이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화장실 이용을 문의했다. 사장님은 물건을 사야지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이용이 가능할 줄 알고 카드를 챙겨오지 않았다. 뒤이어 들려오는 사장님의 한마디,


"그냥 화장실만 이용하려고 했어? 무슨 도둑놈 심보야~"


충격이었다. 나는 왜 당연하게 펜션으로 찾아왔을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내가 부끄러웠다.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을 한 뒤 공중화장실로 향했다. 음식점에 가면 서비스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대부분 '서비스=공짜'라고 생각한다. 서비스는 사장님의 마음이다. 손님에게 감사함을 전달하는 마음이고, 다음에도 찾아와 달라는 마음이다. 당연하듯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주지 않는다고 화낼 권리는 손님에게 없다. 펜션 사장님에게 감사했다. 그동안 받아온 호의를 잊어먹은 고약한 놈을 구제해 줬으니 말이다.

이전 05화 EP.04 불암산→양평 34km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