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대가는 컸다. 정상에서 부는 바람을 간과해선 안 됐다. 부티를 신고, 경량패딩을 입고, 비니로 귀까지 덮었다. 침낭을 얼굴까지 올려 최대한 온기를 붙잡으려 노력했지만, 추위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거의 1시간마다 깼던 것 같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하룻밤이 지났다. 너무 추워 밖에 나가기가 싫었다. 그나마 침낭 안에 있는 지금이 따뜻했다. 텐트 외피로 햇빛이 투명하게 비쳤다. ‘정상에서 일출은 꼭 봐야지’ 지퍼를 열자,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매서운 바람을 밤새 견뎌낸 신발은 차가웠다. 차가운 바람을 탄 공기는 모든 숨구멍으로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를 깨웠다.
낭만은 원초적인 감각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추운 날엔 추위를 느끼고, 더운 날엔 더위를 느끼는 그런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것들이 비로소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바위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시간은 더이상 쫓아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일출은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 느긋하게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나보다 앞서 하산하고 있는 두 명의 등산객에게 불암사 위치를 물어봤다. “불암사는 저쪽으로 쭈욱 내려 가면 돼요, 정상에서 자고 내려온 거예요?“ “아, 네” “부럽다, 부러워~” “멋있어요!” 등산객들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 멋있다는 소리를 벌써 10번 넘게 들은 것 같다. 일주가 끝날 때까지 한 100번은 듣지 않을까 싶어 ‘멋있다 100번 듣기’를 목표로 삼았다. 불암사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아니 ‘환장’이었다. 어제보다 덜할 줄 알았는데 더한 곳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제 이 길로 정상에 올랐다면 이미 어디 하나 다쳐서 포기를 선언하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짐도 무거운데,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내려가야 했다. 한번은 신발 바닥에 물이 묻은 줄 모르고 바위를 밟았다가 시원하게 슬라이딩했다. 하마터면 저세상행 고속열차에 탑승할 뻔했다. 바위를 타고 도착한 불암사. 그곳은 숨을 헐떡이는 나와 다르게 아주 평온했다. 사찰 중앙에 있는 거대한 단풍나무가 보였다. 그 아래 벤치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맞았다. 가을이었다. 나무는 단풍이 떨어져 쓸쓸할지 몰라도, 단풍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쓸쓸함을 달래주었다. 흐뭇해진 얼굴을 보니 나무도 덩달아 기분 좋아졌나 보다. 더 달래주고 싶었는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단풍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가을은 고독의 계절이 아니라, 쓸쓸함을 달래주는 돈독의 계절이었다.
걸음은 나를 남양주 한강공원 삼패지구로 이끌었다. 이곳에 텐트를 치고 한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려 했던 계획은 야영 금지구역으로 바뀐 덕에 물 건너갔다. 자메즈의 <한강이 바다라면> 노래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 “한강이 바다라면 널 품에 안을 텐데…” 강인지 바다인지 헷갈릴 정도로 한강은 크고 넓어서 떠올랐다. 남양주 한강공원은 유난히 갈대가 많았다. 고개 숙인 갈대는 사람이 악수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반가움의 표시로 악수한다. 갈대는 매일 찾아오는 사람이 반가워 고개 숙이는 걸까, 아니면 애타게 만나고 싶은 사람 때문에 하염없이 고개 숙이는 걸까. 후자라면 이제 그 사람은 찾아오지 않을 테니 나라도 마음을 달래줄까 싶어 악수를 청했다.
한강공원을 지나니 익숙한 팔당대교가 보였다. 23년 8월, 강릉으로 가는 길에 지날 때는 안개에 숨더니 오늘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두 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수줍음이 조금 사라졌나 보다. 군밤모자 쓴 아저씨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그냥 산책하는 주민이겠거니 싶었는데 내 앞에 딱 서서 “나의 기를 받아라! 이얍! 충전~ 고속 충전~!!”라고 하는 게 아닌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사회복지사 정신이 발휘되어 맞받아졌다. “하하!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증사진을 찍고, 사진과 번호를 주고받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는 다시 돌아와 말을 걸었다. 잠깐의 대화가 이어졌다. 충전 아저씨라 부르겠다. 충전 아저씨의 친구도 걷기를 좋아해 반가웠다고 했다. 친구는 동해와 남해를 넘어 약 3,500km를 걸었다고 했다. 헤어짐이 다가오자, 영화 대사 같은 말을 나지막이 흘렸다.
“길 속에 도(道)가 있는 거야, 몸 조심히 걸어”
강원도 고성에 도착하면 연락을 드리기로 약속하고 떠났다. ‘길 속에 도가 있다’, 이땐 단순히 멋있다고만 생각하고 넘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길을 걸음으로써 ‘살아있는 실체’ 속으로 들어갔다. 행동하고 깨닫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말로 내뱉었던 것 중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도(道)는 어쩌면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끊임없는 행위가 아닐지 싶었다.
너무 여유 부렸나 보다.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예상치 못한 담력 훈련이 시작됐다. 헤드라이트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뭔가 느낌이 싸했는데 충전해 놓길 잘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은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고 걸었다. 상상이 커질수록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증폭됐다. ‘사박사박’ ‘사사삭’ 산속에서 들리는 정체 모를 소리는 공포스러웠다. 도술을 부려 축지법을 쓰고 싶을 정도였다. 시골 개들은 초록색 눈을 하곤 무섭게 노려봤다. 그 사이를 막아주는 철창이 아니었다면 저 짖어대는 입이 나를 향했을 것이다. “하지 마… 빨리 갈게…” 그렇게 15분 정도 걸었을까. 저 멀리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 소리였다. 그리고 수많은 빛이 반짝이는 양평읍이 보였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로까지 빠져나와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전에 돌아봤더라면 영화 <센과 치히로>에서 나온 대사처럼 되돌아갈 것 같았다. 무서워 벌벌 떨던 나약한 인간은 이제 없었다. 어둡고 무서운 길을 혼자 걸어 나온 남자는 보란 듯이 당당하게 걸었다. 겁먹더라도 일단 하고자 마음먹으면 길이 보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뀜을 느꼈다. 귀신을 믿는 겁쟁이였지만 숙소에 가야 된다는 일념 하나로 평소엔 가지 않을 길을 지나왔다. 이제 어두운 시골길은 무섭지 않았다. 귀신만 나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