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만을 노래하다

by 하은수

시는 매우 아름다운 형태의 기록이다. 개인적으로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자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쓰고 나면 마음이 개운해질 때가 있다. 마치 잔잔한 노래 한곡을 듣고 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군대에 있을 때 신지훈 싱어송라이터님의 ‘시가 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신지훈 님의 맑은 시냇물 같은 목소리와 커피 향 같은 기타가 노래를 매우 듣기에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 준다. 가사 또한 시 같아서 진정 ‘시’가 된 노래이다. 신지훈 님이 어떠한 삶을 사셔서 이렇게 애틋한 가사를 쓰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깊게 몰입하게 되는 힘이 있는 노래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노래들을 즐겨 듣는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자주 들으셨던 대중가요, 주로 포크송을 좋아한다. 동물원, 트윈폴리오, 여행스케치 등등 한때 대한민국 가요를 다스렸던 낭만 넘치던 노래들 또는 비슷한 감정을 물려받은 싱어송라이터들을 즐겨 듣는다. 특히 모두가 좋아하는 김광석 님의 노래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김광석 님의 목소리가 매우 독보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감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평가이다.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그분이 살아계셨을 때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그분의 독보적인 목소리와 어울리는 악기와 선율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셨기에 더욱 아름답게 평가되는 것 같다. 이렇듯 대부분에 가수는 각각 목소리에 어울리는 장르를 찾아 본인들만에 여행을 떠난다. 이러한 그들의 수고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가수와 밴드들의 창조물들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지인들 중에서도 음악시장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분들의 노래도 자주 듣는다. 그분들 노래가 취향에 맞아 감사하기도 한다. 물론 잔잔하고 편안한 선율을 가진 노래만이 아름다운 노래 또는 좋은 노래 라고 할 수 없다. 가끔은 헤비메탈 같은 거칠고 남성 호르몬을 풍기는 노래를 들을 때가 있다. 스트레스 해소에 매우 도움이 되는 장르이다. 나를 대신해 화를 풀어주고 남들을 욕해주는 듯한 기분이랄까? 내가 기타를 쳐서 그런 듯하다. 가사에 맞는 선율과 박자를 가진 노래, 둘이서 조화를 이루는 노래가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이 이상은 취향에 영역이라 더 이상의 토론은 생략하겠다. 그만큼 음악은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엄청난 심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소리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노래에 이러한 힘을 실어주는 것이 가사이고 대부분의 가사는 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시에는 크게 정해진 문법적 규칙이 안 정해져 있다. 비록 전통이 있고 일정한 규칙이 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그저 자유로운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따라 글을 써 내려가는 듯하다. 마치 머릿속에 은은하게 울리는 노래의 선율처럼 시는 머릿속에서 형이상학적인 선율이 들린다. 가사의 내용도 꼭 사랑에 대한 내용일 필요도 없다. 어떠한 시인들은 현대사회에 대한 자신의 비평을 시로 표현하는가 하면 어떤 시인들은 그저 특정한 경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는 시인들이 있다. 세상에는 좋은 노래가 너무 많은 만큼 세상에는 너무 많은 좋은 시인들과 시가 있고 그 많고 많은 노래와 시를 읽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시와 노래가 많기 때문에 인생이 즐겁지 아니한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감독이 로빈윌리엄스의 명연기를 통해 현대사회에게 얘기해 주듯이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시, 아름다움, 낭만, 그리고 사랑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들이다. 인간은 감정이 있고 가끔은 감정에 의해 살아가는 생명체이다. 아무리 사람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행동을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감정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인적으로 mbti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인간을 외향적 또는 내향적인 성향으로 분류하고 논리적인 사람과 감정적인 사람을 구별할 수 있지만 결국에 우리는 나 외에 다른 사람과 공존해야 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비록 내향인이어도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 외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될 사람이다. 그리고 어떠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일부를 희생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흠이 많은 존재일지라도 서로 공존할 때에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와 음악, 낭만과 사랑이 인류를 공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국에 내한 공연하러 오는 해외 팝 가수들이 우리나라의 떼창능력을 경함 할 때에 경험하는 감동을 보면 음악은 서로 다른 민족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하나의 인류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우리나라 케이팝 가수들도 해외 공연을 돌아다닐 때 비슷한 감동을 경험할까 생각해 본다. 방탄소년단의 팬덤과 싸이의 강남스타일 시절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치 종교와 같다고 해야 하나?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찬양집회를 한 적이 있다. 구성원들은 영어권 청년들과 한국어권 청년들로 이뤄어져있다. 서로 영어로 소통을 했지만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자신감은 달라 보였다. 누군가가 따로 통역을 해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의 노래를 불러도 우리는 하나의 신을 찬양했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리고 인류로서 하나의 신을 찬양했다. 세상에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기독교 만큼 세계적인 종교가 있을 까 고민해 본다. 많은 서양 친구들이 다른 나라에 있는 기독교 교회에 대해 들으면 매우 감동하는 경향이 있다. 성경에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을 때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각각 다른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기록한다. 초창기에 인간이 신에게 높은 탑을 쌓음으로 도전했을 때 벌로 각기 다른 언어로 혼란을 일으키고 분열을 일으킨 저주를 풀어주신 사건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어가 다를지라도 자신이 하나의 유일한 신으로 기억받기를 바라셨던 것일까? 더 이상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만이 아닌 모든 인류가 자신의 사랑하는 민족임을 깨닫기를 바라시는 듯하다. 찬양 또한 다른 노래들과 같이 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찬양이 특별한 이유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지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신을 찬양하고 자신의 창조물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희생한 것에 감사드리는 목적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시 또한 낭만을 찬양하지 아니하는가? 시는 낭만과 추억과 사랑을 찬양하는 글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죽은 시인의 사회’같이 인류는 낭만과 아름다움을 경배할 때가 있다. 앞서 말한 것 같이 우리는 우리에게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에 투자를 한다고 했다. 이러한 투자가 찬양이고 경배이지 않을까? 매우 종교적인 해석이지만 나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시와 노래는 우리를 진정한 하나의 인류로 만들어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감정과 추억과 낭만의 기록이다.

20250428_222856.jpg 미국에서 가깝게 지내던 인연들 떠나며 만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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