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증상은 놀랍도록 여러 번 나타났지만, 놀랍도록 증상은 금방 사라지고는 했다. 얼마 가지도 않는 거 그냥 평생 안고 살아 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뛰지 않았는데도 뛴 것만 같은 이 호흡은 분명 미래의 연로한 나에게는 큰 부담이겠지.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고1이 되어, 나는 또다시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었다.
증상은 1달째 나타나지 않았기에 나는 심장에 대해서는 완전히 망각한 상태였다. 나는 평소처럼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은 다시 ‘빨라졌다’. 왔구나, 나는 생각했다. 부정맥의 박동은 평범한 심장의 뜀박질과는 뭔가 달랐다. 운동으로 인한 심장의 박동이 그저 쿵쾅쿵쾅 뛰는 것이라면, 부정맥의 박동은 약하고 빠르게, 달달달, 오래된 세탁기가 떠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전에 교수님이 증상이 나타나면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서 심전도를 받으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곧장 보건실로 가서 구급차를 불렀고, 친구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구급차는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경험이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추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등을 통해 전해져 온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고 과감해서 놀랐고, 나 같은 그렇게 급하지 않은(?) 사람도 탈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나는 심전도 검사를 받으며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증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 이제 해결된 거려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침대는 그대로 응급실에 들어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누워있는 환자의 시선. 누워서 이동되는 환자의 시선을 나는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솔직히 조금 숨이 가쁜 것 말고는 딱히 고통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필요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한편으로는 이게 얼마나 심하면 심하다고, 따위의 생각도 했다. 이전에 교수님이 말하길 부정맥, 그중에서도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 이 의심된다 하셨는데, 이 연령대 학생들한테는 비교적 흔한 부정맥이라고 하셨으니까. 카페인을 많이 마시면 발생한다고 하셨는데. 당시의 나는 카페인을 거의 마시지 않았었다. 그 부분은 억울했다. 단 음식을 안 먹었는데 당뇨에 걸린 사람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다행히도 나의 심장은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구급차에서 내린 후에도 병원에서 제대로 된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90분이 넘도록 나의 심장은 지칠 생각을 안 하고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심전도는 충분히 했는지 간호사가 측정기를 빼고는 침대를 어디론가로 이동시켰다. 5명 정도의 간호사가 나를 둘러싸고는 링거를 맞추는 게 아닌가. 그녀는 링거를 꽂고는 머리맡의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 왜 안 내려가지.”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간호사의 그 작은 중얼거림은 부정맥과는 별개로 나를 긴장시켰다. 아무튼 뭔가 예상과 다르다는 뉘앙스였으니까. 긴장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 심장이 더 빨라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번 교수님이 말씀하신 말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점말 발작성 뭐시기가 맞는 걸까? 내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흔하다는 그 부정맥이 맞았던 걸까? 더 심한 무언가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부정맥은 ‘그 부정맥’이 맞았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간호사의 한 마디로 온갖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알지 못했지만, 나는 분명 긴장하고 있었다. 이윽고 한 간호사가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느낌이 이상할 수 있어요 “
그의 말을 듣고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도 경험한 적 없는 무언가를 내 안에 넣으려나보다, 분명 저렇게 말하라고 지시받았겠지, 였다. 그리고 긴장했다. 매우 긴장했다. 고통은 아닐 것이다. 어지러움도 아닐 것이다. 그가 무엇을 주입하든 간에 그것은 분명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일 것이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온몸의 근육이, 말 그대로 모든 몸의 근육이 팽창하는 기분이 들었다. 척추가 등에 존재함이 뚜렷하게 느껴지고, 뼈와 근육은 아주 시원하면서 동시에 뜨거웠다. 나는 분명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여전히 겁을 먹은 상태였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죽는 거 아냐?’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런 감각을 느끼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니 어쩌면 평생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경험을 했다.
주마등.
내 눈앞에 뭐가 떠올랐는지 지금의 시점에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갯벌에서 봤던 꽃게, 어린 시절 어느 공원에서 배드민턴 라켓을 부러뜨렸던 일뿐이지만, 그 외에도 뭔가 엄청 많은, 전혀 상황과 어울리지도 않는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중에 찾아보니 주마등은 생존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은 기억들을 뇌가 출력해 내는 행위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주마등에서의 기억들은 생존과는 상관이 없는 기억들이라고 한다. 뇌도 죽음 앞에선 혼란스러운가 보다. 급하니까, 정말 아무 기억이나 막 꺼내는 거겠지. 주마등이었을까. 나는 나의 그 경험이 주마등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어,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주마등을 보면서 중얼거린 단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약물투입이 잘못됐다거나 해서 죽음이라는 결과가 일어났다면, 그 어어,라는 멍청해 보이는 단어는 나의 인생에서의 마지막 단어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종종 그 생각을 하곤 한다. 뭐, 애초에 죽음이랑은 상관없는 상황에서의 내 뇌의 착각이었지만, 아무튼 경험한 이상 만약 그 주마등이 정말 죽기 직전에 나타났던 주마등이었다면? ‘어어’라는, 간호사가 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그 단어가, 내 성대의 마지막 울림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내가 겪은 이 주마등은 만들어진 주마등이다. 약물은 제효과를 발휘했다. 내가 겪은 이상한 감각 역시 간호사가 말했던 ’ 이상한 느낌‘ 이 맞았다. 그러나 나의 뇌는 긴장한 나머지 ‘이상한 감강이 앞으로 느껴질 것이다’라는 나의 이성적인 사고를 무시하고 ‘죽는다’라는 생각을 출력했다. 그 결과로 주마등. 착각으로부터 만들어진 주마등이다. 그래, 가짜다. 하지만 동시에 진짜이기도 하다. 간호사의 한 마디로 시작된, 내 이성의 붕괴랄까.
약물의 효과는 대단했다.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나의 심장은 약물의 투입으로 10초가 되지 않아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누워있는 나라기에는 너무 정신이 없었고, 혼란스러웠다. 이후 나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이동했고,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인간들에게 치료받은 한 마리의 야생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몇 주가 지났을까. 나는 엄마와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그간 나를 괴롭혀온 녀석의 이름을 이제야 알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고무되어 있었다.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이 맞네요. 시술을 해야 합니다.”
시술? 약 같은 것으로는 안 되는 건가요,라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 그렇습니다, 였다. 안타깝게도. 나 자신이 가엽게 느껴졌다. 수술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시술의 위치가 심장이라는 점은 나를 다시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요컨대 나는 겁을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