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 금요일
5/6
“이제 더 이상 안 오셔도 됩니다.”
교수님의 기분 좋은 선고를 듣는다.
“감사합니다”
나와 엄마는 인사를 드리고는 상담실을 나갔다.
“축하해, 아들. 이제 끝이네.”
그래, 이것과는 이제 끝이다. 별것 아니지만 성가셨던 이것. 나의 생활에 불쾌한 이물감을 선사했던 이것.
처음에 이상함을 느낀 건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이었다. 체육시간만 되면 공을 만난 개처럼 신을 내는 나는 친구들과 함께 농구를 하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기 10분 정도 남았을 때쯤, 나는 남을 체력을 쥐어짜며 친구의 패스를 받기 위해 발을 때려했다. 그러나 나는 우스꽝스럽게 그대로 바닥을 향해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나의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40분가량을 뛰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심장이 빨리 뛴다는 것은 나의 몸이 산소공급을 원활히 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하지만 달랐다. 심장은 빨리 뛰고 있었지만, 그냥 빨리 뛴 것이 아니었다. 나의 심장은 나의 감각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매우 빨리 뛰고 있었다. 그것은 떨림에 가까웠다.
“괜찮아?”
같이 뛰던 부회장이 나에게 다가와 물어봤다.
“어, 교체하려고. 다리가 삔 것 같아.”
나는 그대로 기어갔다. 낑낑거리며 기어갔다. 친구들은 나의 다리 걱정을 하는가 하면 몇몇 애들은 낄낄거리며 비웃기도 했다. 나도 별생각 없이 웃음을 보였지만, 내가 기어간 것은 결코 친구들을 웃기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나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찼고, 눈치 없는 심장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만 갔다. 그렇게 벤치에 돌아간 나는 친구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봤다. 농구하는 친구들을 보며 ‘진짜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뛴 적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건 ’ 태어나서 이렇게 빨리 뛴 심장은 처음이었기에 ‘ 든 생각이었다. 결국 체육시간이 끝날 때까지 내가 이상함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은 음악시간. 음악실을 가기 위해서는 3층가량을 계단을 통해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나의 심장은 여전히 지칠 줄을 모르고 뛰고 있었다. 계단을 5칸 정도 올라갔을까. 나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옆에 있는, 내가 벤치에 돌아가고도 계속 뛰었던 내 친구는 더 이상 숨을 헐떡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체육시간이 끝난 지 10분이 지났으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다. 5칸의 계단을 오르는 순간, 나는 1시간 가까이 뛴 사람과 같이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 와아~”
나 자신의 몸에 대한 감탄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그대로 계단에 앉았다. 뭔가 이상하다. 계단을 5칸 올랐다고 사람이 이렇게 숨이 차는 것이 말이 되는가?
“왜 그래, 괜찮아?”
친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봤다. 나는 내 목을 짚어보라는 시늉을 했다. 친구는 내 가슴에 손을 짚었다. 이상함을 느낀 건 나뿐이 아닌가 보다, 나는 생각했다. 갑자기 친구가 웃으며 감탄하더니, 뒤에 따라오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아,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친구들은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가슴에 손을 짚고는 감탄을 해대기 시작했다. 돌림측정(?)에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던 나는 친구 한 명을 데리고 보건실에 갔다.
다친 적도 없고 아파도 하굣길에 병원에 들르는 것을 추구하는 주의인 나였기에 보건실은 처음이었다. 보건실 선생님은 마침 한 학생의 진찰을 끝내신 참이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니?”
아까 친구들로부터의 반응으로 조금 기분이 고무되어 있던 나였다. 나는 들떠있었다. 내가 지금부터 할 말에 저 선생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체육시간이 끝나고요, 심장이 빨리 뛰어서요.”
일부러 체육시간이라는 말을 붙였다. 선생님의 반응이 궁금해서 구사한, 의도된 문장이었다. 선생님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잠시 응시하셨다. 2초 정도의 어색한 침묵을 나는 즐기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심장이 평소랑 다르게, 엄청 빠르게 뛰어서요.”
즐기는 건 여기까지 하고, 이제 진짜 문제를 말하자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의 심장을 빨리 뛰었고, 나의 숨 또한 무척이나 가빴다. 선생님은 ‘오, 그렇구나, 참 놀라워 ‘라는 표정으로, 심박수 측정기를 가지고는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은 아무래도 나를 꾀병을 부리는 학생으로 간주한 듯하다. 보건 선생님들은 꾀병쟁이의 얼굴은 다 외우고 계시겠지. 그렇다면 나는 신종 꾀병쟁이가 되려나.
아주 작은 스테이플러같이 생긴 측정기였다. 그녀는 나의 손가락에 측정기를 물리고는 화면에 나타나는 숫자를 지켜보셨다. 나는 내가 정상 심박수가 몇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 자신의 상식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숫자는 올라갔다. 130, 150…200. 나는 정상 심박수가 몇인지는 몰라도 200은 잘못된 수치임을 선생님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니? “
“아까 체육시간 중간에요. 한 30분 전인 거 같아요. “
선생님은 나의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그를 보건실로 불러냈다. 잠시 뒤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나는 그의 도움으로 가까운 대학병원에 갔다. 차에서 내린 나는 엄마와 합류해 응급실로 ‘걸어서’ 들어갔고, 간단하게 증상을 말하고는 심박수를 측정하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이때 응급실이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구급차에서 실려오는 환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인 줄 알았다. 응급실 내부도 생각보다 평범했다. 여느 병실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너무 편안하게 들어가서 배정된 침대에 누웠다.
일주일 뒤, 심전도 검사의 결과를 듣기 위해 엄마와 병원에 다시 방문했다.
교수님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증상이 완화되고 나서 오셔서, 정확한 측정을 하지 못했어요. 이렇게 되면 증상이 뭔지 알아내기 어려워요.”
증상이 다시 생기면 오라는 말씀이었다. 증상이 생긴 상태에서 심전도 측정을 해야지만 원인을 알 수 있단다.
언제 생길 줄 알고,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한 생각으로부터 발생된 나의 생각이었다.
앞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다시 느낄 일이 얼마나 있을까. 군대에서…? 일단 죽음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과,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아주 올바른 태도를 가지게 해 줬다는 점에서 부정맥은 고마웠다면 고마운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