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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의 끝, 채워지지 못한 것

어느 나이 때나 나는 내가 철이 들었다고 생각해 왔다.

by 김규민

2025년 2월 7일은 여러 의미에서 특별한 날이 아닐까.


3/6


금요일은 고2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날인만큼 아쉬움은 막을 수 없었다. 아,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며. 고3,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친구들과 말을 튼다는 것은 참 힘든 과정이다. 물론 친해지면 더없이 즐겁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만큼은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는 단연코 내 학창 시절 인생 중 가장 아름답고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가득 찬 시절로 남을 것이다 (아직 고3이 끝이 난 것은 아니지만,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고3은 고1과 고2의 추억으로 버티는 것이라고 하신다.). 나의 학창 시절이라고 부를만한 시절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나의 모든 학창 시절이 하나의 필름이 되어 내 머리를 스쳐간다.


초1: 여자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은 초등학교 시절의 연애는 연애가 아니라고 하던데… 이유가 뭘까?) 그리고 축구를 한창 열심히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주 시끄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초2: 아주 장난기 많은 친구가 학교의 운동장에서 잠자리를 찢어 불개미에게 던져주던 장면이 생각난다. 이 기억 말고 없는걸 보아 그때의 충격이 상당했던 모양인지, 아직도 잠자리의 내부 구조가 머릿속에 생생하다.

초3: 전학을 가며 여자친구와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이때가 아닌가 싶다.

초4: 이 글을 스며 나의 기억에 초4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초5: 초4와 마찬가지이다. 이유가 뭘까.

초6: 후반기 코로나가 터졌으며, 이땐 내가 어른인 것 마냥, 고등학생과도 대화가 통하리라 생각하고 다녔다.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나이를 먹을 때마다 한결같이 “이제 이 정도 나이면 어른과도 말이 통한다는 나이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유치원 시절에는 초등학교 6학년이 무슨 대학생처럼 보였고, 중학교 시절에는 선후배 관계가 부각되다 보니 그런 생각의 정도가 조금 덜했다. 오히려 중3 선배를 보며 ‘아직 고등학생도 안 됐으면서 왜 이렇게 내 위에 있는 것처럼 구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은 내 학창 시절의 공백기로 남을 것 같다. 특별했던 점이라면 코로나로 인해 1학년과 2학년은 거의 날려먹은 것, 1, 2, 3학년 모두 한 담임 선생님 아래서 보냈다는 것 정도다.(3년 연속 같은 반으로 배정된 학생은 그 선생님조차 처음이라고 하셨다.)


지금이야말로 나에겐 정말 소중한 추억과 친구들이 있는, 현재진행형의 기점이다. 조금 강한 표현으로 말해볼까. 나는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라고 미래의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했다. 처음으로 꿈이 생겼으며, 처음으로 ‘타인에게 읽히는’ 것이 목적인 글을 썼다.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처음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가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진짜 친구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생겨.


중학교 때 이런 소리를 들었다. 당시엔 믿지 않았다. 아빠라는 예외도 있었다(예외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아빠는 종종 ‘김교수, 날세’ 하면서 통화를 하곤 하시는데, 그분과는 중학교 때 만나 고등학교에서 친해졌다고 하셨다.). ‘나와 00은 달라’라고 생각하며 부모님의 말씀을 흘려듣곤 했다. 일단 고3에 들어온 지금까지는 내가 이겼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가장 친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었던 녀석은 여전히 나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당연하지만, 나는 지금도 나와 그 친구의 관계를 믿는다. 솔직히 아직도 부모님이 말씀하신 ‘대학 가면 자연스럽게 해어질 거야’의 의미를 모르겠다. 학벌이 우정을 갈라놓는다니, 조금 무섭고 슬픈 이야기다. 아아, 정말 모르겠다…


다시 돌아와서, 요즘 나는 행복과 불안이 섞여있는 모순적인 감정을 자주 느낀다. 이유는 최근에 알았다. 친구들과 함 깨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열심히 살면 열심히 살수록, ‘이렇게 했는데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인간관계만큼은 정말 좋다. 반에는 안 친한 친구가 없다. 그래, 지금의 난 행복하다.


가끔 담임 선생님들 중 롤링페이퍼 제도를 도입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며, 해당 달의 생일자에게 학급 친구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어주는 행사. 작지만 그건 분명 특별하다. 하지만 나에게 이건 씁쓸한 행사이다. 나는 3월에 태어났다. 3월이 어떤 달인가. 3월은 반이 바뀌고 친구들과의 만남,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달이다. 학급 친구들이 3월 생일자에게 해줄 말이라고는 ‘생일 축하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라든가 조금 특별하다 싶으면 ’아직 너를 알지 못해서 쓸 말이 없구나, 미안하다!‘ 정도다. 그나마 후자는 나의 기분을 알아줘서, 진부한 인사인 전자보다는 오히려 후자가 나에겐 더 좋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받은 롤링 페이퍼는 달랐다.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나와 3월 출신의 친구들은 글로 빼곡한 롤링페이퍼를 받을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어느 나이 때나 나는 내가 철이 들었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에도 말해보건대 나는 내가 어느 정도는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내가 받은 롤링 페이퍼에 장난이나 농담은 없었다. 그렇게 장난치기를 좋아하던 친구조차도 장문의 글을 써주고, 종이는 빼곡했다. 집에 가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웃음을 머금고 종이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3학년의 교과서를 받으러 간다. 에코백을 가져왔는데 챙겨야 할 교과서는 에코백의 도움 없이도 가방에 전부 들어갔다. 괜히 가져왔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를 기다린다.

“가 볼 거야? “

“물론이지”

다행히 나는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선택과목의 담당 선생님이 누구일지 궁금해(해당 과목의 선생님은 두 분이 계신다), 그중 한 분께 가서 여쭤볼 생각이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과목을 선택했기에 궁금한 마음에 함께 교무실로 가기로 했다.

“안 계시네.”

교무실을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둘러보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으응.”

솔직히 선생님이 자신의 담당 반을 아실지 모르실지는 확신할 수 없었기에, 만나더라도 답을 들을 듣지 듣지 못할지는 미지수이었다. 그래도 인사정도는 드리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돌아간다.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녹은 눈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웠다.

“동아리 어떡하지.”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된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우리 동아리는 3학년은 안 받을걸”


부모님은 3학년이 되면 이동이 잦고 비교적 늦게 끝나는 사진부를 관두라고 하셨다. 사진부를 관두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시나리오는 앞서 나와 친구가 찾았던 선생님의 동아리에 합류하는 시나리오였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기도 하고, 만약 나의 선택과목이 다른 선생님으로 배정된다면 선생님과 동아리를 통해서라도 만날 수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생각한 계획이었다, 만.


선생님이 밴드부를 담당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야 말았다. 밴드부라니,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비틀즈와 아레사 프랭클린, 제니스 조플린 그리고 티나 터너… 하지만 나와 악기의 거리는 멀어도 너무나도 멀다. 사진부에 소속하지 않은 나라면 그 어떤 동아리라도 상관없었기에, 나는 선생님이 맡게 될 동아리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밴드부는 오디션도 필요하거니와 들어가더라도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만간 사진부에 남겠다는 나와 이를 반대하는 엄마와의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친구와는 안타깝지만 횡단보도에서 이별이다.

“그동안 재밌었다! 잘 지내라.”

친구는 짧은 인사를 끝으로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방금 그 인사는 어떤 의미일까? 그 작별인사는 나와 같은 반이 됐다는 사실을 잊은 듯한 작별인사였다.


—바로 다음 일정.

바퀴로 더러워진 눈은 질퍽하고 미끄러워 마치 진흙탕 같았다. 버스도 진흙탕 같은 신세를 피할 순 없었다. 커브를 돌 때마다 버스 안의 애매하게 남은 눈들은 좌우로 춤을 추곤 했다. 아, 다음 역에 내려야 한다.

‘하차벨은 누군가 누르겠지… 이곳은 많은 사람이 내리는 역이니까.’

하차벨에 불이 들어왔다. 귀에서는 하차벨의 소리가 아닌 비틀즈의 ‘hello, goodbye’ 의 후렴구가 나오고 있었다.


1분만 걸으면 나오는 건물의 4층. 그곳에 있는, 필요 이상으로 전문성이 돋보이는 단어는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든다. 별 수 있겠는가.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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