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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비는 내린다. 하지만 눈은 겨울에만 내린다.

by 김규민

나는 비 맞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눈을 맞는 건 어째선지 싫지 않다. 포근하달까, ‘이리 와’ 하는 듯한, 그 미묘한 눈의 품속을 난 좋아한다. 눈이 내리면 우산을 쓰고 나가는 가족들을 볼 때면 조금은 아쉽기도 한다. 너무 실리만 추구하는 건 아닌지. 게다가 눈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가령 잠에서 일어난 내가 별생각 없이 창밖을 볼 때. 눈이 두고 간 선물을 나는 발견하게 된다. 그때의 나의 심정이란! 밤사이 세상은 색을 잃어간다. 이 문장은 부정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눈으로 인한 세상의 색 잃음은 아름답다. 하얀색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다.


우리 집의 창문은 보면 집 앞의 놀이터가 보인다. 빨간 패딩, 노란 패딩… 모든 것이 하얀 창문 속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진 아이들. 이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고3의 책상까지 도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장갑이 불편해 빨개지는 손의 아픔을 참아가며 맨손으로 눈싸움을 하고는 했다. 장갑 좀 끼고 놀라는 엄마의 말에 손에 마스크를 씌우는 기분이라 싫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눈덩이를 만들어 누가 더 큰 눈덩이를 만드는지 시합하던 기억도 난다. 눈사람이 아니다. 눈덩이였다. 큰 눈덩이. 해어질 시간이 되면 친구와 만든 눈덩이를 부수곤 했는데. 눈덩이를 만들거나 합채 하는 시간보다 파괴의 시간이 가장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다.

이른 아침 아직 태양이 뜨기 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가로등의 조명에 주차장의 아스팔트 위로 반짝거리는 눈은 마치 은하수 같다. 하늘은 저렇게 어두운데. 바닥이 대신 빛나주는구나, 예쁘다. 눈호강이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학교를 향해 걸을 때쯤이면 가로등의 조명은 꺼지고, 태양이 바통을 받는다. 가로등이 반짝이는 눈을 조금씩 보여줬다면, 태양은 새하얀 눈을 다 보여준다. 눈이 하얗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예쁘다. 눈호강이다.


이렇게 예쁜 눈도 태양이 비추면 녹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태양빛도 눈도 모두 아름다운데, 공존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심지어 태양에 그을린 눈은 질퍽한 눈이 되어 우리의 이동을 불편하게 만든다. 비는 내릴 때 우산이라는 불편함을 준다면, 눈은 내린 후 시간이 지나 이동에 불편을 준다. 어느 자연이 완벽하겠냐마는, 눈은 그 단점이 더욱 도드라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바닥에 쌓인다는 특징은 눈과 꽃의 공통점이다. 아름답다는 점도 눈과 꽃의 공통점이겠다. 결정적인 차이는 색과 형태에 있을 것 같다. 나는 목련을 좋아한다. 목련이 핀 나무를 보면 눈보다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다. 목련은 봄의 눈이다. 왜냐면 떨어진 목련 꽃잎은, 시간이 지나면 색깔이 변하고 결국엔 질퍽한 눈처럼, 미끄러운 바나나껍질이 된다. 결구엔 눈이나 목련이나 모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집에 가져가면 모두 ‘녹는다’. 이들은 영원한 아름다움이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해 주는 자연물이다.


겨울에도 비는 내린다. 하지만 눈은 겨울에만 내린다. 비는 세상을 유지시키지만, 눈은 세상의 형태를 바꾼다. 눈은 낭만적이다. mbti로 비유하자면 infj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나도 눈처럼 되고 싶다. 세상처럼 거창한 건 아닐지라도. 적어도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 싶다. 물론 좋은 부분으로. 그러니까 나는 녹으면 안 되겠다. 질퍽해지니까. 녹더라도 차라리 아주 녹아버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산 좀 쓰고 다녀 “

패딩에 맺힌 눈의 이슬을 보며 엄마는 말하곤 한다.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눈의 위로를 받으며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의 말에 발끈하고는 한다. ‘내 맘인데’ 같은 느낌으로. 눈의 위로. 위로받을 사람도 없으니까, 눈의 포근함은 날 안심시키곤 한다. 무엇으로부터?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안심된다. 그리고 눈이 내리면 아무리 시끄러운 거리일지라도 뭔가 적막한 기분이 든다. 시각적으로 적막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적막함이 보인다.


눈이 내리는 계절이 끝나간다. 눈은 꽃들에게 바통을 건네준다. 그때는 꽃들의 위로를 받고 있으려나. 목련이 날 미끄러트리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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