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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인연을 만들다

국어학원의 윌슨

by 김규민

12월 2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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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40분. 항상 앉는 자리에 앉기 위해 학원에 일찍 도착한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1등.

자리에 앉고 가방을 걸고 입고 있던 패딩을 벗는다. 자연스럽게 옆의 창가를 보는 순간 나는 허전함을 느꼈다. 허전함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창가에 있던, 2달 전부터 방치되어 온 나방의 사체가 사라진 것이다.


2달 전 그 녀석을 처음 봤을 때에는 그것이 꽃봉오리나 비슷한 무언가인 줄 알았다. 하얗고 동글동글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생명활동을 정지한, 한 마리의 나방이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5번째로 그 나방을 볼 때쯤 내 안에서 정 비슷한 무언가가 생겼다.

—안녕 (도착할 때)

—잘 있어 (수업이 끝날 때)

나는 내 나름대로 그 녀석과 아주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하얀, (먼지 때문에 점점 회색이 되어가던) 생명체였던 것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나도 늘 같은 자리에 앉았고, 어느새 나는 그에게 블랑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있었다. 블랑카. 고양이한테는 나비, 강아지한테는 바둑이 같은 정석적인(?) 느낌의 이름이 있다면, 나비나 나방에게 정석적인 어감의 이름은 블랑카가 아닐까 싶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블랑카, 답이 뭘까?

수업도중 선생님이 제한시간을 주시고 지문을 풀어봐라 하실 때. 문제가 잘 안 풀리면 블랑카를 흘깃 보며 가벼운 고찰을 그와 함께하고는 했다.


사라진 블랑카를 보고 내가 ‘캐스트 어웨이‘ 의 윌슨을 잃은 톰 행크스 같은 반응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블랑카가 국어학원의 윌슨과 비슷한 역할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에게 작게나마 이입을 한다던가, 의식을 나눈 것은 분명했으니까. 애초에 이런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면 1달후에 나는 블랑카를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나와 블랑카는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나방은 죽은 후에 블랑카가 되었다. 나는 빈 껍데기와 대화를 나눴다. 수신은 없는, 송신만이 있는 대화. 하지만 나는 대화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작지만 분명한 위로와, 알 수 없는 안심도 느꼈다. 블랑카라는 이름을 벗겨내면 그것은 하나의 나방에 불과하다. 하나의 나방. 먼지가 쌓인, 치워버리고 싶은 존재. 문득 이름은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별것도 아닌 것을 별것, 혹은 그 이상으로 바꿔주니까 말이다.


블랑카는 어떤 나방이었을까? 이 나방은 어떤 나방이었을까?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벌래들의 삶은 어떤 삶일까? 학원에서 죽은 이 벌래는 어떤 생을 살아왔을까? 얼마나 살았을까? 이 벌래는, 살아있는 동안엔 그저 벌래였을지 모르지만, 생을 마감한 후에 그 벌래는 적어도 나에게는 블랑카였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삶이 후생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블랑카는 벌래로서, 다음 생을 인간으로 보낼 만큼의 업을 쌓았을까? 블랑카는 죽은 후에 나의 블랑카가 되었기에, 그가 나에게 준 소소한 긍정적 영향들은 업에 포함되지 않겠지. 이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미 블랑카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한 마리 혹은 한 명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블랑카가 행복한 후생을 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비록 우리의 인연은 일방적이었지만.


블랑카는 내가 감정을 이입한 첫 번째 비생물은 아니다. 이름을 붙여주면 그것들은 ‘그것’에서 ‘나의 00’ 이 된다. 블랑카 뿐만이 아니다. 가령 우리집에는 카메라가 한대 있다. 내가 1년에 걸쳐서 돈이 생기는 족족 꼬박꼬박 모아서 중고로 산 나의 소중한 카메라다. 이 녀석은 나의 눈이 되어주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비춰주며, 추억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봐라. ‘이 녀석’ 은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진정 그렇게 대우한다고 보기에는 정이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나의 카메라에게 ‘스테파니’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냥 떠오르는 이름을 붙여줬다는 부분에서 신중하게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는 카메라를 산 이후 계속 녀석을 스테파니라고 부른다. 무언가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그건 무언가에서 (이름)이 된다.


나는 한 마리의 수명을 다한 벌래와 일방적인 교류를 했다. 국어학원이라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고립된 공간에서 말이다. 생명이 없는 존재와 인연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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