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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이었을까 (3)

by 김규민

약 2개월 뒤 나는 시술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초등학교 1, 2학년 시절에 나는 천식 때문에 병원에 자주 입원하고는 했는데, 그 이후로 입원은 처음이었다. 그때는 천식이고, 당시는 부정맥이었으니 입원의 무게감이 다르지만.


대학병원이고, 듣기로는 그렇게 큰 시술도 아니라서 시술 그 자체에 대한 걱정은 없었지만, 불만이 있다면 입원기간 동안 누워있는 시간을 소비할 물건을 챙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지고 온 것이라고는 도서관에서 빌렸던 이집트에 관한 책 (메소포타미아였을지도 모른다) 1권이 전부였다. 나는 나의 패드를 가져가고 싶었는데. 엄마는 입원실에서는 인터넷이 안될 것이라며 이를 반대했고, 순수하게 납득해버린 나는 정말로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입원실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고, 엄마는 시치미를 떼었다. 내 생각엔 시치미를 떼신 것이 분명하다.)

간호사가 들어왔다. 때가 됐구나, 나는 생각하고 자리에 누웠다.

“여기 타세요”

내 눈앞에는 휠체어가 있었다. 다시 보니 내가 누운 침대는 벽과 붙어있는, 이동이 불가능한 침대였다. 뻘쭘해진 나는 그렇게 휠체어에 앉았다. 휠체어에 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 조금은 불경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휠체어를 탄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간호사는 무척이나 젊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젊으신 분이었다. 그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와 나는 아무도 없는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고등학생이죠? 몇 학년? “

“1학년이요.”

”한창 공부할 때네. “

다행히도 그는 말을 걸어 주었다. 나는 마침 ‘형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젊은 간호사와 단 둘이, 아무 말도 없이 통로를 지나는 그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어느 중학교 나오셨나요?”

”ㅇㅇ중학교요. “

“아! 저도 거기 나왔는데.”

엥. 진짜?라고 생각했다. 산술적으로 참 적은 확률. 당연히 입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거기 ㅇㅇ쪽에 있는 곳 아닌가요? 근처에 ㅇㅇ초등학교 있고.”

“어! 맞아요!”

그는 나보다도 더 신난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이런 우연도 있네, 라며.

“긴장되지는 않나요?”

칙칙한 분위기의, 광고도, 거울도 없는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가 말했다.

”긴장됩니다. “

“별거 없을 거예요.”

부디 그렇길 바란다고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 눈앞에는 분산한 사람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기구들, 수많은 침대. 가장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 의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꼭 90년대 영화 속에서 나오는, 전화벨이 울리고 기자들이 북적이는 언론사를 연상 캐 했다. 나는 어느새 이동식 침대로 환승하고, 간호사 형의 인사를 뒤로하고 다른 이의 손으로 넘겨졌다. 중학교 선배님을 만날 줄이야. 짧지만 강한 인연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간다. 어둡다. 음침하지는 않지만, 분명 수술실이다. 수술실. 수술실. 내 머릿속에서는 수술실이라는. 단어만이 맴돌고 있었다. 안녕, 하고 교수님이 인사하신다.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대수술도 아닌데, 이게 뭔 꼴값이람. 나는 어리니까 긴장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수면마취약 들어갑니다.”

수술하기 전, 엄마와 나는 사전에 상의 끝에 수면약은 최대치로 넣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엄마가 잘 말씀드렸으려나. 나는 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용량이 아니면 잠에 들지 않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마취약 넣어요”

와와와, 진짜 시작이구나, 긴장. 긴장했다. 어쩌면 최대치의 수면마취약도 나의 긴장을 억누르지 못할지도. 차가운 뭔가가 살결에 닿는다. 사전에 본 시술영상에서의 과정을 되뇌어보건대, 이건 칼이다. 이제 곧 혈관에 기다란 무언가가 들어가서, 심장의 회로를 끊는 작업이 이루어지겠지.

나는 속으로 ‘트랜스포머’의 한 장면을 상상하다가도, 견자단의 ‘엽문’을 상상하는가 하면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해내려고도 해 봤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잠에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 잠들었나요?”

목소리로 추측컨대 덩치가 컸던 보조 간호사다. 질문은 이상했다. 분명 대답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대답이겠지.

“아니요.”

질문이 들어왔다는 것은, 보통 이때쯤이면 잠에 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잠에 들지 않았다.

“네”

얼마나 지났을까.

“…. 잠들었나요?”

“….. 아니요.”

나는 기억을 거슬려 초등학교 3학년의 아이들을 생각해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4학년의 아이였나? 얘는 언제 만났더라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

수술실에서는 알 수 없는 기계음과 중간중간 ‘전압을 낮춰라’와 비슷한 맥락의 문장을 뱉으셨던 교수님의 말만이 울렸다. 나는 여전히 잠에 들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술 끝났습니다.”

“잠에 들었나요?”

이번에는 장난기 섞인 말투의 질문.

“…. 아니요. 하하.”

나는 기여코 최대용량의 수면마취제를 이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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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