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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이었을까 (4)

by 김규민


”최대치로 넣었는데, 어떻게 깨어있던 거니, 하하“

간호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나도 따라 웃었다. 이상하다. 긴장은 진짜 안 했는데. 친구들을 새느라 바빴을 뿐이었다.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잠에 들었으려나.

나의 하반신에는 모래주머니가 올려져 있었다. 바지는 변색된 피로 검붉은 색을 띄우고 있었다.

수액을 놓은 그는 이내 자리를 비켜준다. 나와 엄마만이 남아 있었다.

“와이파이 잡히지?”

“그러게. 잡히네.”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엄마는 몰랐지, 여기가 인터넷이 될 줄은.”

연기다. 상식적으로 엄마가 몰랐을 리가 없다, 고 생각했고, 당시엔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는 꽤 엄마에게 실망했었다. 이런 거 하나 못 해주나. 책 한 권으로 어떻게 버티라고. 누군가는 자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낮잠을 싫어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때 의 나에게, 왜 그렇게 엄마에게 실망이라는 감정을 느꼈는지 잘 공감이 가지 않는다. 아마 어려서 그랬겠지. 지금도 나는 어리지만, 그땐 더 어렸으니까.


그래서 나는 집에서 가져온, 도서관의 바코드가 붙어있는 이집트 문명(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다. 책을 읽는다는 수 말고는 내가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수는 없었다.

2시간 뒤에 간호사가 들어왔다.

“심전도 검사할게요.”

“네”

익숙해진 나는 옷을 들춘다.

“… 책을 읽으시네요.”

“? 네 “

책 읽는 환자가 없을 거 같긴 하다. 와이파이가 되는 환경에서 누가 책을 읽겠는가? 요컨대 책을 읽는 나라는 환자의 모습은, 하루종일을 병원에서 보내는 간호사의 눈에도 신기하게 보였다는 의미이다.

“애가 패드를 안 가져와서요.”

“아, 그렇군요. “

아니, 이게 무슨 대화지? 엄마의 돌발행동. 나는 부끄러워졌다. 딱히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의도로 책을 읽었던 것도 아니다. 근데 왜 엄마는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하는 걸까? 심지어 저런 말은 나의 엄마의 성격과는 매우 거리감이 있는 말이었다.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저럼 말을 한 걸까? 내가 아까 화낸 것이 의외로 엄마에게 상처가 됐나?

간호사가 나가고 엄마에게 항의했다.

“왜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해? 딱히 그런 말 안 해도 되잖아?”

“뭐가?”

입원실에는 듣는 귀가 많다. 나는 아니야, 됐어 라며 대화를 끝냈다.


옆에는 커튼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간병인이 붙어있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간병인이 없어선 안 될 정도로 스스로의 몸을 가누시지 못하시는 모양이었다. 간병인은 새로 들어오는, 이틀만 있다가 나갈 이웃인 나를 반겼다. 고1인 나를 아기라고 부르며, 이따금씩 귤을 주고는 했다.

첫째 날, 나는 책을 2 회독했다.

첫째 날 밤, 나와 엄마는 옆의 할아버지의 가래소리 (와 가래를 빼는 기계의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둘째 날. 책을 2 회독했다. 온종일 모래주머니에 눌렸던 하반신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엄마도 지친 모습이었다. 하루 종일 할 게 없으시려나. 스마트폰만을 뚫어져라 보고 계신다. 암모니아 냄새. 간병인의 투덜거리는 소리. 아, 저런 게 늙어간다는 거구나. 아니면 내가 극단적인 경우를 보고 있는 걸까. 문득 무서워졌다. 자연적으로 늙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 마지막에는 다 저런 모습이 되는 걸까?

셋째 날. 퇴원.

간병인은 정들었는데 아쉽다며 2개의 귤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인사를 하고, 엄마와 나는 병실을 나갔다. 드디어, 나는 집에 갈 수 있었다.

“정말 너는 돈 덩어리구나.”

웃음며, 엄마는 병원을 나서며 말씀하셨다.

“어른이 되면, 그때 다 갚을게요.”

갚을 수 있을까? (이 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한 3년 정도 지나면 그 답이 나오지 않을까.)

부정맥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죽음과 가까워진 적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분명 꼴값이겠지만, 2년 전 이 추억은 죽음에 대한 진지한 내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었던, 하나의 소중한 기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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