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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모의고사, 오만과 방심

by 김규민

모의고사를 봤다. 목표는 국수영사탐 순으로 23211 등급.

오만과 방심 사이 어딘가에서 나온 나의 결과는 44213 등급이었다.


1교시 국어

국어라는 과목이 무슨 과목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알 수 없는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니는 국어학원은 매주 한 번씩 8시 40분부터 10시까지, 즉 실제 수능에서 국어시험을 보는 시간과 같은 시간에 실전 모의고사 시험을 본다. 처음에 20개씩 틀리곤 했던 나는 이전에는 몰랐던 나의 참모습과 대면하며 조금씩 나아져갔었다. 그리고 이번 3월 모의고사를 보기 전 한 달간 나는 꾸준히 5~10개라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범위의 오답률을 보였다. 이대로라면 3모에서 2등급을 노려봐도 그렇게 허황된 목표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3월 26일 오전 8시 35분의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1달간 학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나였기에. 이번에도 그때처럼만 하면 된다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 안심에는 자신감도 있었을까. 그 자신감은 무모한 자신감이었을까. 모르겠다. 국어는 독서론, 독서, 문학, 선택(나의 경우 화법과 작문)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늘 문학, 선택, 독서론, 독서의 순으로 풀고는 했다. 문학이 가장 자신이 있었고, 독서론이 가장 자신 없었으니까. 학원 시험에서도 문학은 항상 다 맞는 나였다. 그랬는데.

김명인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를, 문학의 마지막 지문으로 만났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나의 사고는 정지함과 동시에 모든 몰입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나로서는 이 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학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나는, 무엇보다 문학만큼은 항상 다 맞았던 나는 ‘문학은 다 맞아야 한다’는 되지도 않는 강박에 사로잡혀 문제를 붙잡기 시작했다. 되지 않는 문제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음으로 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조언은 당시 나의 머리에는 없었다. 어찌저찌 풀고 나는 선택으로 넘어갔다. 화작을 골랐는데. 화작이야말로 진짜로 다 맞아야 하는데.(이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정신상태는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깨진 몰입의 틈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듯, 나의 마음속은 우웅우웅, 소름돋는 소리만을 낼 뿐, 그 어떤 사고도 할 수 없었다.

화작을 다 풀었을 때는 20분이 남아있었다. 완벽한 실패. 망한 시험이었다. 나는 이뤄지지 않을 기적을 바라며 독서를 시작했다. 20분 안에 어떻게 독서를 푼단 말인가. 30분도 적게 느껴지는 독서를 말이다. 나는 초월적인 힘을 통한 기적 따위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기적은 없다. 시험은 모두에게 공평하기에.

국어는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려웠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처참한 성적을 받았고, 학원에서 쉬운 문제만 푼 것도 아니었다. 뭐가 문제였던 걸까? 이번 경험은 ‘실전과 비슷한 환경’에서의 훈련과 ‘실전’은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나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국어는 마음의 과목이라는 사실이다. 마음가짐의 변화만으로 국어성적은 뛸 수도, 처박을 수도 있다. 이건 경험으로서 내가 얻은 하나의 진리다. 그렇다면? 실천은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이건 차차 알아내야 하는 하나의 과제가 되겠다. 기한은 230일 정도려나.

2교시 수학

수학은 3이 목표이며 그 이상은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나의 핑계를 대자면 나는 문과이기에. 수학은 나로서는 도저히—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투자하자니 탐구와 영어가 부족해지고, 하자니 절망스럽다. 요컨대 계륵이다.

시험이 시작하자 나는 침착한 마음으로 시험지를 넘겼다. 학원을 바꾼 뒤로 나의 수학 실력은 어느 정도 올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가 말하길 1번부터 10번까지는 무조건 다 맞아야 한단다. 나도 안다. 나도 알지만.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 범위에서 나는 2 문제를 틀리고 만다. 방심. 방심이었다. 3등급은 그리 어려운 등급이 아니다. 노력만 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등급인데. 나는 그걸, 경솔함이라는 요소 덕분에 실패하고 만다.


3교시 영어

영어는 난감한 과목이다. 처리할 수 있는데 계속 미루고 있는 과목이랄까, 선생님도, 나도, 나는 해석을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선지해석을 하지 못한다. 이는 무슨 의미냐— 단어를 모른다는 의미다. 단어 부족. 누군가가 해석의 방법을 몰라 쩔쩔매는 동안, 나는 단어의 부족으로 지문을 이해했음에도 답을 고르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번 시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그렇게 많이 모르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았다는 점이랄까. 결과는 간신히 턱걸이 2등급. 단어를 모르는 주제에, 다소 과분한 느낌의 등급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어를 언제 외운담.


4교시 한국사

나는 매국노일지도 모른다. 한국사. 교육청에서 도입한 킬러문항 배제 정책은 어떻게 된 거지? 나에게는 모든 문제가 킬러 문항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등급도 모르거니와 채점도 하지 않았다. 이건 모르겠다. 친구들이 말하길 모 강사의 6시간의 기적만 들으면 해결할 수 있댄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보는게 좋으려나. 시간낭비려나. 아직도 고민 중이다.


5교시 생활과 윤리

오만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3월 모의고사의 생활과 윤리라는 과목의 1 등급컷은 그 전의 기록으로 보건대 40점 초반이 대부분이었다. 40점 초반이 1 등급이면, 한 세 문제 정도만 틀려도 괜찮은 거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따위의 마음가짐으로 나는 시험에 임했다. 모의고사에 감사한다. 정신차리게 해 줘서. 나는 6문제 정도를 틀리고, 3등급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나는 오만했다. 너무나도 오만했다. 같은 과목을 고른 다른 친구들은 다들 잘 봤던데. 나만이 3등급을 받았다. 선생님한테 뭐라 말하지,라고 생각했으나 그냥 말씀드리는 편이 나에게도 자극제가 될 것 같았다. 결과를 보낸다. 자, 이제 선생님은 나의 등급을 아시게 되었다. 6모 때 변한 모습을 보여주자.

6교시 세계사

솔직히 말해서 이때도 오만했다. 그러나 이는 타당한 오만함. 세계사를 푸는 데 걸린 시간은 단 7분. 그리고 3분간 검토를 한다. 2문제를 수정하고,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국어에 대한 후회도 하고, 수학에 대한 걱정도 했다(당시 나는 수학이 3등급이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세계사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시험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움직여도 좋다는 말씀을 하시자마자 나는 같은 세계사를 하는 친구에게로 가서 답을 맞혀봤다. 나는 만점을 확신할 수 있었고, 마지막을 나름 좋게 끝낸 나는 그나마 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채점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현장감. 그 작은 분위기의 차이가 국어라는 과목에 너무나도 큰 타박상을 입혔다. 내가 목표로 하는 대학교의 철학과는 물론이거니와 서울 안의 대학에서도 이런 성적은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3모라는 것에 감사하며. 남은 230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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