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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일주일— 친구와 공부, 그리고 책

by 김규민

야자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2년이 넘도록 다니던 관리형 독서실을 그만둔다는 건 나에게 큰 결심을 요구했다. 집에서의 시간보다 관리형 독서실에서의 시간이 더 많았다는 점에서 지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나의 집은 관리형 독서실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었다. 조교선생님들과 실장님과의 상담이라는 동기부여는 나에게 더없이 좋은 자극제였다. 나의 지정석은 나의 방처럼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이런 독서실을 끊어도 좋을까?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결심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나의 단점을 직시했을 때, 야자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거니 싶었다. 나의 단점. 그것은 주변 환경에 잘 휩쓸린다, 남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관리형 독서실은 개개인의 자리에서의 시야가 차단되어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졸게 되고, 그 와중에 무의식 중에 감시카메라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쳐들며 최선을 다해(?) 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선차단이 없는 야자가 나에게 필요했다. 이유는 또 있다. 야자를 하며 나는 공부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다. 솔직히, 진짜 솔직히 말해서, 내가 주변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둔다고 나의 성적이 오른다는 보장은 없거니와 최악의 경우 ‘이들과 어울리는 나도 뛰어나다’는 경솔한 착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의 성격상 그렇게 되지는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 녀석들과 친한 내가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어깨를 피겠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야자라는 환경의 변화를 주어, 나 자신을 고무시키는 전략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저만치 위에 있는 친구들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보기 힘들 정도로 ‘이상적인’ 친구들이다. 덕분에 ‘눈치보는’나는 더 노력하게 된다. 야자는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월, 수, 금 3일밖에 하지 않지만, 그 3일은 아주 효과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10시까지라는 것 정도려나.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순수한 착각으로부터 기인한 글이 아니길 바란다.


3월 모의고사의 결과에 대한 상담을 했다.

선배들이나 선생님들의 말로는 담임선생님과 3월 모의고사에 대한 상담을 하고 나면 맨탈이 터질 것이라고 하던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니었다. 솔직히 나는 터지기를 바랬는데, 담임선생님이 너무 착하셔서. 뭐랄까, 강한 말씀을 하시지 못하는 성격의, 그런 선생님이라 그런 걸지도.

철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논술전형을(보험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조금 놀라신 눈치였다. 어느 정도의 대화를 나누다가 선생님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셨다.

“사실, 선생님이 논술전형으로 철학과에 갔거든. 그리고 국어국문학과로 복수전공을 했지. 너 같은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진로를 정하지 못해서 간 거였지만. “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물론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순수 수능만으로 가는 거지만) 방향의 선배님이셨네! 하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보통 논술학원을 다니는 것을 추천하지 않으신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무래도 학교 내신에 가치를 두지 않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닐까. 정시 파이터의 길을 반대하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아무래도 본인이 논술로 합격하신 경우이시다 보니, 논술 학원을 다닌다는 나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결국 모든 선생님들의 말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선생님은 나의 이름을 검색하시더니 그래프를 보여주셨다.

“다행히 계속 늘고 있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1학년부터 기록된 나의 모의고사 성적 그래프였다. 그래프는 뚜렷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와, 정말로 계속 늘고 있네. 뿌듯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44213 등급이 내 최고점이라니 ‘ 였다. 쓴웃음이 나왔다. 올랐다는 뿌듯함. 최고점의 ’ 수준‘에 대한 허탈함. 두 감정중 어떤 감정을 느껴야 좋을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집 근처에 서점이 있는 건 참 좋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교보문고가 있다. 오직 서점 하나를 목적으로 시간을 내기에는 힘들지만, 일요일, 같은 방향의 학원이 일찍 끝나면 가곤 한다. 일요일에 나는 국어학원을 간다. 학원은 5시에 끝나기로 되어있지만, 원장님이 수업에 대한 욕심을 내시면 30분, 많게는 40분이 더 걸릴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패스.

원장님이 시간조절에 성공하실 때(그 기준은 20분이다. 아무튼 정시에는 절대 안 끝난다.)는 서점에 간다. 5분만 걸으면 된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효율적이다. 3번 중 한 번 꼴로, 서점에 가면 책을 사곤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빌려 읽으면 한 번 읽고 다시 안 보다가 결국엔 머리에서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에.

두 달 전에는 ’ 네루다 시선‘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파블로 네루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와 관련해서 언젠가 글을 쓸 날이 오지 않을까. 아무튼 두 달 만에 선생님이 시간조절에 성공하셨다(정확히 23분 초과였지만, 3분은 넘어가기로 했다). 저번달부터 사려고 했던 책을 사러 갔다. 품절되지는 않았으려나. 두 달이나 지났는데 재고가 없으면 어떡하지.

주말이라 그런 걸까 서점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듬성듬성 몰려있는, 애매하게 복잡한 인파를 뚫고 비어있는 검색대로 향했다. 작가명을 검색하자 수많은 책이 나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에 품절이라는 글씨가 있어 당황했지만 내가 찾는 책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불안, 불안…‘불안’이라는 글자를 찾자... 찾았다. 재고는 6개나 남아있었다. 살짝 맥이 빠졌지만, 남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로 하자.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나는 읽고 싶었다. 내가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로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이후 ’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를 읽었고, ’ 불안‘은 알랭 드 보통의 나의 세 번째 책이 되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역시 주말은 이런 마무리여야지, 하며. 가끔은 자신에게 이런 선물을 줘야 한다.

너무 책을 많이 읽는 것도 고3에게 마냥 좋다고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목표를 이뤘을 때의 이야기지만(만약 이루지 못한다 하면 그 원인은 책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때 책을 읽지 않고 공부만 했다면 더 높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과 ‘불안’에 한정해서, 나는 무책임해지기로 했다. 책은, 어쩔 수 없다. 책은 나에게서 자는 시간을 뺏는 것이지,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지는 않는다. 이런 식으로, 책에 한정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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