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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by 김규민

처음으로 반의 ‘새로운’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반이 바뀌고 한 달 하고도 18일 만의 일이다. 나의 성격은 변했다. 옛날에는 먼저 말도 잘 걸고, 금방 친해지고는 했는데. 요즘은 처음 보는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다는 게, 무슨 심리작용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잊어버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사실 이전에 기회는 많았다. 예를 들어 목요일의 체육시간. 골키퍼를 잘했던 나는 팀의 무실점을 지켜냈다. 우리 반에서 나눠진 4개 팀중 유일한 무실점 팀이 내가 있는 팀이었고, 나는 꽤 훌륭한 선방들을 해냈다. 이건 골이다 싶은 공을 몸을 날려 막은 일도 있었다. 그때 같은 팀의 친구들과 반의 친구들 모두 감탄사를 하며, 몇몇은 나에게 대단하다며 말을 걸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시선이 감탄의 시선이었음을 알았음에도,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나의 시선을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눈동자로 도망치듯 옮겼다.

친구들은 나를 아직까지 ‘골키퍼 잘하는 조용한 아이’ 정도로 알고 있지 않을까. 사진을 잘 찍고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조지아어와 인도어와 히브리어를 조금 아는 나는 모르겠지. 가끔 관심 있는 주제의 대화에 끼고 싶을 때가 있는데, 오디오가 비지 않아 들어갈 틈도 없거니와 갑자기 끼면 이상할까 봐 못하고… 아무튼 인연을 만들지 못하는 핑곗거리는 많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는 꽤 있다. 전교회장이라던가, 축구를 잘하는 친구라던가. 사실 1년만 보고 헤어질 사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연을 만들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요즘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쉬는 시간에 대화할 친구가 한정되어 있는 학교생활은, 생각한 것보다 더 힘들었기에. 하지만 먼저 말은 걸지 못했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한담. 옛날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어릴 적의 나, 아니 고1의 나에게만 가도 그 방법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고민 자체가 조금 웃기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새로운’ 친구와의 대화라고는 했지만 그것도 사실 온전한 대화라고 하기는 힘들다. 각자의 이동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모였을 때다. 키가 큰 친구. 아마 체대를 준비하는 친구였을 거다.

“아, 힘들다.”

혼잣말인 거 같았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시선을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의 말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왜?”

“체육이 연속으로 2교시나 있거든. 시간표 짠 사람 누구냐 진짜.”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일방적으로 나는 맞장구만 치면 되는 짧은 대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눈을 마주친다는 상황이 나에게 강제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스스로를 이런 환경에 더 노출시켜 볼까?

나는 나의 이런 성격에 불만이 많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타인 앞에서의 나의 모습을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바야 하는 걸까? 아니면 스스럼없는 친구들 앞에서의 나의 모습을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사람마다 이 두 상황에서의 성격차이랄까, 간극의 차이도 저마다 다른 것 같다. 나는 어느 정도려나. 친구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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