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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고침

by 김규민

가끔 나도 모르게 시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 방금 그거 꽤 괜찮지 않나?”

그것은 그저 살아가다가 갑자기 떠오른다. 맥락이 있기도, 없기도 하며, 친구나 주변사람으로부터 멋진 문장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글쓰는 것을 인생의 로망(?)으로 삼기 시작했을 때부터이다. 아니 돌려 말하지 말자. 소설가가 되고 싶다, 고 생각했을 때부터인 거 같다.

시 쓰기와 소설 쓰기 모두 좋아하는 나는, 처음에는 그것과 관련한 문장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나의 머리를 믿고 ‘밤에 적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잊은 것.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디어인지, 문장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것’. 상당히 속상했다. 지금도 그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받아 적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으니까. 생각나는 즉시. 그게 언제, 어디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곤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맞는 말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나, 인간의 특성을 참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시나, 나의 글에 대한 아이디어들은, 그 순간이 아니면 그 가치는 사라진다. 받아 적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나서, 초기에 나는 작은 스프링 수첩을 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랄까. 괜히 분위기를 내려고 한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봐, 나는 아이디어가 생기면 곧장 적는 사람이야.’라면서. 진심으로 나의 아이디어나 문장을 받아 적는 것이 목적이 나닌, 주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도 같다. 어느 순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는 그저 막연하게 작가를 꿈꾸는 한 명의 학생에 불과했다. 이런 내가, 작가라도 된 것처럼 손노트를 들고 다닌다라. 내가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 뒤로 나는 발상이 떠오르면 그냥 휴대폰을 꺼내, 화면 속 노트에 적는다.


쓰고 있는 소설이 있다. 일단은 10만 자로 생각하고 쓰고 있는데, 아직 도입부(?)밖에 쓰지 않았는데 만자가 넘었다. 생각보다 쓰고 싶은 이야기, 표현이 많아서 ‘어,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발상이 떠오르면 적기라는, 나의 약속 역시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고3안에 완성할 수 있을까. 아마 안될 것이다. 그래도 미완성이라도 보여줄 사람은 있다. 나는 3년 연속으로 동아리를 바꿔 지금은 글쓰기(소설 쓰기) 동아리에 있다. 그나저나 3년 연속 동아리를 바꾼다라,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인생에 있어 몇 없는 이적생활이다. 의리를 중요시하는 나이기에 학원을 바꾼다거나, 좋아하는 팀을 바꾼다거나, 하는 이런 ‘소속한 곳에서의’ 이동은 원래 하지 않는 주의의 나이기에. 아무튼 나의 글은 동아리와 몇몇 선생님들께 보여드리게 되지 않을까.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니 든 의문이 있다. 나는 왜 글을 좋아하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다. 나는 중3 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노는’ 학생이었다. 불량스러운 학생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었고, 그저 에너지가 넘치는, 한 명의 중학생이었다. 글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아 그래도 한 가지, 그때 나의 특징이라면, 소설을 참 좋아했었다.(고3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소설보다는 철학 관련 저서를 더 많이 읽는 듯하다. 빠듯한 시간에 쫓겨 요즘엔 그것마저 어렵지만.) 그리고 꿈이 많이 바뀌었다.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내가 꿈이 많이 바뀌는 데에는 소설의 영향이 컸던 듯하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 꿈을 바꾼다. 로망을 바꾼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문득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꿈꾸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상 글을 좋아하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나 자신을 ’ 새로고침‘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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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