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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모의고사, 반등과 걱정

환경과 타협하기

by 김규민

목요일은 경기도 교육청의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고3이 되어서 2번째로 보는 모의고사이다. 모의고사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냐마는, 모의고사들의 중요도에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이번에 볼 5모는 조금 아래에 있는 모의고사였다. 나는 무척이나 예민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지난 3월 모의고사의 뼈아픈 기억을 덧칠하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있어 5월 모의고사는 매우 중요하게 느껴졌다. 특히 국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1교시 국어

시험 보기 직전 3월 모의고사의 기억이 났다. 최악 중의 최악. 아무리 난이도가 높았던 국어라지만, 당시 나의 점수는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처참한 점수였다. 56점이었던가. 나는 나를 믿었기에, 이런 점수는 나의 본 실력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5월 모의고사였다. 긴장이 됐다. 자리에 앉고, 감독관 선생님이 문제지를 배부한다. 적막을 틈타 옆의 비염이 있는 친구가 훌쩍였다. 젠장, 시험 볼 때 저게 나의 집중력을 분산시키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할수록 코끼리는 생각나는 법이다. 시험 보기 전에 저런 좋지 않은 요소들을 인식하다니, 나로서는 최악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온 내용이었던가. 두려움이 생기면 이에 맞서지 말고 반대로 하라는 그의 조언이 떠올랐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당시의 나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단지 문장 자체만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리를 떠는 친구(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모른다), 비염 때문에 코를 훌쩍이는 친구, 조금 산만한 친구. 등등. 이건 무시하는 게 아니다. 집중력을 통한 몰입으로 자연스럽게 잊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 받아들이는 ‘ 것이다. 문제를 풀며 나의 귀에는 모든 배경음이 들려왔다. ’ 그래, 비염이구나.‘ ’ 그래, 비염이구나.‘ ’ 그래, 비염이구나 ‘… 나는 그때마다 받아들였다. 시험이 시작하고 15분쯤 지났을까. 나는 자연스럽게 훌쩍이는 소리와 그 밖의 모든 요소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국어시험을 푸는 과정은 꼭 잠에 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잠에 들다가 어느 순간 의식이 끊기듯, 국어시험도 풀다 보면 점점 외부 요인이 하나 둘 사라지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나만의 세상에서’ 문제를 풀게 된다.

문제는 매우 쉬웠다. 문제를 풀면서도 이거 너무 쉬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3모는 이런 부분에서 도움이 되었을지도.

시험이 끝나고 집에 가서 가장 먼저 채점한 과목이 국어이다. 점수는 91점. 2등급이었다. 한 문제만 더 틀렸다면 3등급이었을 점수였다. 안심하면서도, 그래, 이게 나의 원래 실력이다,라고, 없는 청자에게 말했다.


2교시 수학

나는 수학과 영어가 늘 두렵다. 언제쯤 늘까, 고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 있는 과목으로 회피하려는 나 자신이 싫을 때가 많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모의고사의 경우, 수학은 1번부터 10번까지는 무조건 다 맞아야 그래도 공부하는구나— 하며 학생 취급을(?) 받는다. 나는 어땠을까? 보기 좋게 9번과 10번을 날려먹었다. 3월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수학을 체 점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걸까.라는 생각이.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능은 1번뿐이고, 모래시계 속의 모래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6모의 그날까지, 수학에 집중해 보자. 나 자신과의 약속을 했다.


3교시 영어

지난 3모 때 나는 국어에서 정신을 놓고 점수를 망치는 일이 있었다. 5모의 영어는 나에게 그런 시험이었다. 시험지를 펼치고 4문제를 푸는 순간 느꼈다. 이번 시험은 망했구나, 하고. 나의 멘탈은 무너졌다. 듣기를 제외한 반정도를 풀었을 때는 이미 시험이 10분밖에 남지 않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과목에서, 나는 나 자신의 통수를 치고 말았던 것이다. 어째서? 점수는 70점. 모르겠다. 영어. 타국의 언어가 나의 학교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건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5교시 생활과 윤리

시험을 보기 하루 전날 어렵기로 유명한 부분의 문제를 풀며 대비를 했었기에, 자신이 있는 상황에서 나는 시험을 봤다. 좋아, 좋아…하나 둘 문제를 풀었다. 어렵기로 유명한 부분. 롤스와 노직, 싱어 등등, 유명하신 철학자들의 말을 하나 둘 걸러내며 답을 찾았다. 문제를 다 풀고, 나는 당황했다. 당연히 생활과 윤리는 세계사급으로 자신 있는 과목이 아니었기에 고민되는 문제가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고민되는 문제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2문제. 각각 2개의 선지가 마음에 걸렸다. 문제는 모두 내가 대비한 어려운 부분에서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방심이리라. 집에 가서 문제를 봤을 때, 두 문제 모두 갈등하던 2개의 선지 안에서 답이 있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모두 나는 정확히 오답을 골랐다. 점수는 40점. 정확한 2 등급컷에 걸려, 가까스로 2등급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난 3모의 수모도 일정 부분 회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너무 아쉽다. 2개… 맞췄으면 1등급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6교시 세계사

세계사는 정직한 과목이다. 생윤처럼 선지에서 푸는 사람을 속이지도 않고, 계산고 추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정말 정직한 과목. 순수암기. 그렇기에, 틀린다면 그것은 무조건 나의 탓이 되는 과목이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 3점짜리 문제를 하나 틀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부끄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농담삼아 세계사는 10분만에 끝난다고, 다른 선택과목을 선택한 친구들에게 말하고는 하는데, 이건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이번에 12분 정도만에 문제를 전부 푸는 데 성공했다. 남은 20분 동안 무엇을 할까. 검토를 해야 한다. 피핀? 그래, 피핀의 아들은 샤를마뉴지… 굽타 왕조는 간다라 미술 양식…등등. 다시 봐도 문제는 없었다. 다만 마지막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별생각 없이 ‘맞았겠지’라며 넘겼다. 수능이었으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경솔함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교훈을 남겨주며 나의 모의고사는 끝이 났다.


국수영사탐, 44231이라는, 3월의 기억은 이제 끝. 6모까지 나는, 국수영사탐 24322라는, 다소 불안정한 등급을 안고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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