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배신당하는 기분이 든다. 디데이는 다가오는데, 너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니,라고 말해도, 나는 정신 차리지 못한다. 어쩌다가 한 번 아다리가 맞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면, 내일의 내가 어떨지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기뻐하게 된다. 나는 잘 될 거야, 라면서 그냥 막연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참 여유롭구나, 나.
무책임한 걸지도 모르겠다. 6월 모의고사가 2주도 남지 않은 지금, 나는 무슨 기분을 느끼고 있는가. 글쎄, 나답지 않게, 놀랍게도 무척이나 싫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시험에 대한 긴장감 같은 건, 직전이 되지 않고서야 잘하지 않는 나였기에. 금요일은 체육대회를 하는 날이었다. 3학년인 나는 줄다리기 말고는 구경도 참여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방대한 자율학습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야자를 하러 갔다. 도착하니 친구가 말하길 오늘은 야자가 없단다. 야자를 위해 이동하던 중 선생님을 만나서 ‘오늘 야자하러 가요’라고 말했던 나다. 괜히 뻘쭘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야자를 했다. 물론 관리감독 선생님이 없는 야자를. 나를 비롯한 4명의 학생들(모두 아는 친구들이었다) 만이 야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선생님이 들어오실까 두려워하며(우리를 발견한다면 내쫓으실 확률이 높았다).
와우, 놀랍도록 효율적인 야간자율학습이었다. 단 1초의 낭비(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도 없었다. 금요일은 수학을 푸는 날이라고 내 나름의 규칙을 세워뒀었는데, 이를 충실히 이행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칭찬해주고 싶었지만. 야자실을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얼마나 갈까?
종종 나에게 암시를 하고는 한다. 일종의 세뇌랄까. 이런 말을 하면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교육열에 찌든 고등학생처럼 보일까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해보건대, 나는 입시에 실패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공부에 대한 열망이 생긴다.
입시에 실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선 친구들을 떳떳하게 볼 수 있을까. 나의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하신다. 친한, 친구들이기에, 떳떳하려면(?) 나는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 두 번째로, 선생님들을 다시 찾아뵙기가 꺼려지지 않을까. 이건 진짜 최악. 종종 선생님들 중에 ‘자기와 친했던 제자가 수능을 보고 연락이 끊기더라. 3년째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소름이 돋는다. 다들 웃어넘기지만, 나는 정말 상상만 해도, 아니 상상하기가 두려워지는 이야기다. 으으, 조금 한심한 이야기지만, 이런 동기부여(?) 없이는 공부를 못 하는 타입이 나라는 사람인 듯하다.
6모가 다가온다. 재수생들이 다가온다(그들은 우리들의 등급컷을 올릴 것이다….). 인생 첫 투표일도 다가오지만 이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아아,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편한 마음으로 투표할 수 있을 텐데. 글을 쓰다 보니 공부할 마음이 생겼다. 쓰면서 각성이라도 한 모양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가 끝나면, 나는 단어를 외우지 않을까. 아니 외울 것이다. 행운을 빈다, 11일 뒤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