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합 5.
3개 과목의 등급을 합산했을 때 5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6월 모의고사에서의 나의 목표였다.
지난 5월 모의고사에서 가채점 당시 나의 국어점수는 91점이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성적표에 적혀있는 국어영역의 점수는 81점. 10점이나 차이나는 나의 점수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가 잘못 채점된 걸까. 마킹을 실수했나? 그렇다고 나의 시험지를 다시 확인하면 두 번 죽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두려움에 나는 ‘잘못 채점되었을지도 모르는’ 시험지를 다시 확인하지 못했다. 영어. 5월의 영어도 처참했다. 점수는 68점.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점수인가? 무서워졌다. 수능까지 남은 일수를 카운트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의 경우 그런 요소에 정신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짓은 관둔 지 오래다. 하지만 세지 않더라도, 늘 상기되는 한 가지 진리가 그림자처럼 나에게 붙어있다.
—수능은 다가온다.
수능은 다가온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다. 나에게 다가온다. 여유 부리지 않는다. 일정한 속도로 다가온다. 시간. 자아가 없는, 이 시간이라는 개념은 때로 무섭게 느껴진다. 생명체처럼 움직이는데. 한결같이. 꼭 식충식물 같다. 자아는 없는데, 나를 ‘잡아먹는’, 그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달까. 성적표를 받고서야 나에게 느껴졌다. 이 기분, 정말로 겪어봐야만 아는구나, 싶었다. 고2도, 고1도, 절대 느낄 수 없다. 아무리 고3 선배들과 선생님들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 후회할 수 있다고 경고한들, 겪지 않고서야 이건 의미가 없는 것이다. 3합 5. 6모에는 꼭 이걸 달성할게요. 비공식적인 상담을 통해 나는 선생님과 그렇게 약속했다. 사실 내심 알고 있었다. 조금 무리가 아닐까? 하고. 하지만 따질 때가 아니었다. 3합 5, 해보자. 이건 선생님과의 약속인 동시에,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우선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열심히 했다. 내가 상상한 이상적인 성적은 이랬다. 국어 2, 수학 3, 영어 2, 생윤 1, 세계사 2. 국어는 마음의 과목. 태도만을 연습하면 점수가 오르는 과목인 건 확실했다. 무슨 태도를 가져야 할까. 문제를 풀 때마다 항상 생각했다. 이런 지문은 이렇게 사고해야지, 같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수학은 그냥 한다. 말 그대로, 그냥 한다. 한 가지 변한 점이 있다면,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어느 날 친구와 선생님의 대화내용을 들을 때, 옆에서 주워들은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선생님은 수학 풀 때, 그냥 방탈출 문제 풀듯이 풀었던 거 같아.”
괜찮은데…? 그날 나는 수학을 풀며 선생님에게 들은 마인드를 가지고 문제풀이를 시도해 봤다. 확실히, 포기는 안 하게 되더라. 이를 통해 태도 교정이랄까, 나는 조금 수학과 친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단어가 전부. 단어만을 외웠다. 하지만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단어를 힘들어한 이유. 그건 바로 ‘단어와 뜻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apple이 어째서 사과지? 같은 이야기다. 어떠한 구조적인 연결점이 없다. 그냥 애플은 사과다. 외우는 거다. 이런 게 싫었다. 아무런 이유 없는, 단순 암기. 그런 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단어책이 있었다.
drastic. 과감한. 과감히 ’ 드레스‘를 ’ 틱‘ 찢어서 과감한 것. 이런 식으로 외우게 하는 단어책이 있다. 몹시 부끄럽고, 단어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나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에서 내가 이 단어장을 펼치는 일은 없었다. 너무 부끄러웠기에… 야자가 끝나고 집에서 잘 때까지의 시간만이, 내가 단어를 외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에 말할 6모의 결과를 보건대, 열받게도 이것의 효과는 확실했다….
사탐. 나 자신에게도 의외인데, 나는 사탐에 대한 자신감이 현저히 낮은 상태였다. 생윤은 그냥 1등급의 ‘벽’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이 벽을 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냥이다. 이유 없는 자신감. 하지만 이 이유 없는 자신감은, 확신이 있는 자신감이다. 분명, 가능하다.
한편으로 세계사는 안 한지 한 달이 넘은 상황이었다. 세계사, 아, 이 열받는 과목. 물론 좋아는 하지만. 세계사만큼 휘발은 알코올 같고, 또 그만큼 빨리 회복이 가능한 과목이 있을까. 한 시라도 손을 놓으면 안 되는 것이 세계사였다. 조금 미리 말하자면 이번 세계사는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 그 값을 톡톡히 치뤘다.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선거날. 내 인생 첫 투표를 하고, 6모 직전 대비를 하는 학원들의 수업을 듣고… 3합 5는 어떻게 맞춘담. 국어 2, 영어 2, 탐구 1이면 되려나…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6모는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