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이런 걸? 진짜 의외다”
의외라니? 예상할 만하지 않나?
사람마다 나를 보는 시선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어쩌면 이건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나의 안타까운 성질이 초래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학원에서 나는 모범생이다. 태도가 좋고 성실하달까, 선생님들한테 그런 인상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부모님 앞에서 나는 굉장히 과묵하다. 일 년 전부터인가. 특별한 계기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자식이 되고 말았다. 수능이 끝나면 바뀌지 않을까. 부모 앞에서의 나의 성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젠간 해봐야 할지도.
4살 어린 여동생 앞에서는 좋은 오빠일 것이다. 아마도. 나와 여동생의 관계는 조금 특별(?) 하달까. 여타 자매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흔한 남매’ 같은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나 할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서로 간의 존중이 있으며 고민도 나누고, 공부 이야기도 나누는(여동생은 중학교 전교권이기에. 나보다 좋은 미래가 있을 거 같다), 다른 의미로 이상적인 오빠다. 공부에서 그녀에게 뒤처지는 이상 (그 나이에 수능영어를 다 맞는다거나 하는 이상, 내가 뒤쳐지는 건 당연하다) 최소한 성숙해 보이는 오빠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여동생도 이런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잡지식이 많은 친구 정도려나. 실없는 헛소리도 많이 하고, 농담 따먹기도 하고, 의외로 가장 말이 많아지는 순간이 친구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2등급을 간절히 갈망하는, 노력하는 친구로 봐주면 기분이 좋을지도. 학교에서 나랑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이 전교권이다. 3등급인 나는 1등급인 친구에게 가끔 이런 농담을 한다.
“국어 내기할래?”
친구는 웃으며 말한다.
“몇 점 줄까?”
“필요 없는데? 그런 거.”
자조적인 대결신청이랄까. 하룻강아지인 나는 그렇게 덤빈다. 내가 덤비면, 친구도 반쯤 웃으며 받아준다. 마음 아픈 사실은, 하룻강아지인 나는 그걸 또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며 ㅋㅋ. 3등급이 어떻게 1등급을 잡겠냐마는. 시험 당일만큼은, 나는 그 사실을 지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후회한다. 이거, 이거, 이거 맞았으면 동점인데. 아까워라, 라며.
이렇게 성격이 다양하구나,라는 사실을, 키보드를 두드리며 다시금 실감한다. 웃긴 건, 몇몇 성격은 연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확실히 여동생 앞에서의 나의 4할은 연기다. 이상적인 오빠를 연기한다. 누군가 동생과 내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나의 모습이 전교 일등에 전교회장인 오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학원에서의 나도 조금은 연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모습을 떠올려 봤을 때, 나는 학원에서 차분한 성격을 연기한다고 할 수 있겠다. 부모님 앞에서의 나는 연기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 그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는 내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시절이 있었던 거라면 좋겠다. 나만 그런 거면 정말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아들이 아닐까) 친구들 앞의 내가 진짜 성격이려나. 음, 근데 그러면 너무 하찮은 내가 되어버리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당장의 친구만 생각해도 선생님 앞에서는 모범생인 척(?)을 하다가 나의 앞에서는 고등학생 특유의 실없는 농담을 하는 친구가 있다. 내가 한다는 그 차분한 성격도 어쩌면 모범생의 흉내일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친구들도 부모님 앞에선 다르겠지, 생각해 본다. 직장인들도 집에서의 모습과 일에서의 모습이 다르듯,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 가면을 쓴다. 그러면, 진짜 성격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분명히, 어딜 가나 일관된 태도와 자세로 사람을 상대한다면, 그건 분명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확실히, 진짜 모습이라는 건 상대적인 것이 아닐까. 진짜 성격이 뭐가 중요할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냥 잘 보이면 되는 건데. 이상한 고민이네, 나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