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2등급 한 번 받아보고 싶다.
7월에 대한 나의 목표였다. 항상 높은 3등급만 받은 나에게, 한 두 문제 차이로 3등급을 받는 나에게 너무나도 간절한 등급이었다.
수학 3등급 한 번 받아보고 싶다.
7월에 대한 나의 목표였다. 1번부터 10번까지를 모두 맞춰낸다는 일차적인 목표를 달성한 시점에서, 나에게 수학 3은 너무나도 간절했다.
영어 2등급 한 번 받아보고 싶다.
영어는 모든 과목 중 내가 가장 약해지는 과목이었다. 멘탈적인 이야기. 한 지문이 해석이 안되면, 그때부터 무한한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나였다.
탐구는 이번에, 나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현실적인 목표를 잡았다. 세계사 2, 생윤은 높은 3등급. 세계사의 경우 한 문제 틀리면 2등급, 두 문제부터 3등급이 되어버리는 미친 과목이다. 한편 나는 세계사에서의 약점은 뚜렷했다. 현대사. 냉전과 그 이후의 부분에 한해서 나는 너무나도 약했기에, 해당 문제를 틀린다 생각하고, 나머지를 다 맞는다는 의미에서의 2등급이었다. 생윤은 정말 안타깝게도 긴 수면상태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1등급은 물론이고 2등급마저 목표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만한 생각이었다. 방학 때, 반드시 두 개의 탐구과목을 1등급으로 올려놓으리라 다짐하고 있는 나였다(아니면 무조건 재수다. 아니 재수를 상정하고 싶지 않지만).
1교시 국어
최근 국어를 공부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멘탈에 너무 큰 영향을 받는다. 1등급을 받던 아이도 수능에서 4등급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이 국어다. 다행히도 나는 해당 멘탈 문제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시험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컴퓨터 사인펜을 꺼내고, 필적확인란 옆에 빠르게 한 문장을 휘갈겨 썼다.
‘나는 국어의 아버지다’
반농담으로 적은 건 맞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국어시험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국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된다. 국어학원 원장님조차도 그 순간에는 그저 나에게 귀여운 존재가 된다(원장님 죄송합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세계에서 국어를 가장 잘하는 학생’의 역할에 몰입한다. 그렇다, 요컨대 ‘오만’ 해지는 것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 이 자신감은 생각보다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틀리면 어때, 같은 안정감과는 다르다. 당연히 답이지,라는 마인드에 더 가깝달까. 6모 당시 나는 친구들로부터 오만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컴퓨터 사인펜을 이용해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다음부터는 샤프를 이용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컴퓨터 사인펜을 쥐었다. 이유는 예상할 것이다. 오만해지기 위해서. 자신감과는 다른 것이다. 뻔뻔함, 오만함 같은, 누가 들어도 안 좋다는 생각이 드는 이 마인드는, 국어시험에서만큼은 나에게 유용한 듯하다(물론 오만함은 스위치로 구성되어 있다. 시험이 끝나면 나는 매우 겸손해진다.). 결과는 놀랍게도 90점. 독서 파트에서만 2점 문제 5개를 틀린 결과였다. 한나 아렌트(운이 좋게도 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던 중이었다)와 관련된 지문에서 한 문제, 시간이 없어서 손대지 못한 지문에서 4개. 이때 나는 나 자신이 고무적임을 확인했다. 독해밀도에 이상은 없다. 손대지 못한 문제를 제외하고 내가 틀린 문제는 한 문제뿐이다. 시간을 줄여나가자.
2교시 수학
만약 입시에 성공한다면, 안정적인 수학등급을 수능에서 받는다면, 필시 이 책 덕분이라고 할 만한 다소 신기한(?) 문제집을 만나고, 절반정도 풀어낸 시점에서 푸는 첫 번째 모의고사였다. 문제집에서 알려준 요령들을 써먹을 수 있는 문제가 나오면 좋겠다며, 내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시험지를 넘겼다. 다행히도 1번부터 10번까지는 풀어냈다. 일차적인 목표 달성. 뛸 듯이 기쁜 심정을 억누르고, 11번을 풀었다. 괜찮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12번을 봤다. 어떻게 푸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풀 수는 있었다. 학생이 아닌 독자라면 감이 안 잡힐 수 있는데, 수학문제에는 종종 ‘노가다’를 이용해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극단적인 예시로 1부터 100까지의 수를 더하시오,라는 내용의 문제가 있을 때, 한 줄로 끝낼 수 있는 공식이 있음에도 1부터 100까지의 숫자를 일일이 계산한다면, 그것은 노가다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2번은 그런 문제였다. ‘한 줄로 끝낼 수 있는 공식’에 해당하는 풀이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노가다를 했다. 5분 정도 걸렸을까. 답이 나왔다. 3점을 확보. 13,14,15번을 찍고(무책임해 보일 것이다. 실제로 무책임한 것이 맞다. 나의 목표는 3등급이었기에, 풀지 못할 문제는 포기한다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주관식으로 넘어간다. 16, 17, 18을 풀어내고 19번을 보자, 웃음이 지어졌다(진짜 웃진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신기한 문제집’에서 알려준 풀이법이라면 벵벵 돌지 않고 간단히 풀어낼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문제집의 작가가 강조했던 주의점을 조심하며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평소의 나라면 못 풀었을지도 모르는 문제였기에, 기분이 좋았다. 뒤의 문제들을 찍고, 확률과 통계를 풀어낸다. 시험이 끝나고 채점을 했을 때는 3등급이 맞았다. 그러나 낮은 3등급이었고, 재수생이 없음을 감안했을 때 마냥 기뻐하기엔 어려운 성적이었다.
3교시 영어
결과론이지만 1, 2교시의 과목들은 시험을 보기 전 목표한 등급에 도달한, 성공적인 점수를 얻어냈다. 영어는 그 반대의 케이스였다.
듣기를 다 풀고, 문제를 푼다. 18, 19, 20번은 무난했다. 그런데 21번 문제에서 나의 사고가 엉키기 시작한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다른 걸 풀까, 하는 생각에 시험지를 넘겨본다. 쉬운 파트를 풀고, 다시 돌아와 천천히 읽어봤지만 변함은 없었다. 포기하고 다른 문제로 넘어가자,라는 생각을 하며 넘어가자, 그 문제 역시 읽히지 않았다. 귀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하면 생기는 나의 생체반응이다. 망했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시험이 끝나고 집에 가서 다시 풀어봤을 때 내가 받은 점수는 78점, 6월의 점수와 비슷했다. 이번 7월이 6월보다 더 어려웠음을 감안하면 분명 나의 실력은 늘어나 있었다. 78점보다는 당연히 낮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처음에 학교에서 푼 진짜 시험지를 채점해 봤다. 결과는 4등급이었다. 멘탈이 이렇게 무섭다. 국어와는 다르게 영어는 오만함이 통하지 않았다. 애초애 나의 실력이 국어처럼 최소 높은 3등급이 아닌 것도 있고, 국어와는 다르게 읽히지 않는다는 새로운 돌발상황이 있기 때문이리라. 영어의 멘탈문제, 오만한 전략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