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시 한국사
영어를 보고 넋이 나갔었던 나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다음 교시는 처음으로 내가 ‘준비’해본 과목이었기에. 한국사라는 과목은 보통 수능 보기 한 달 전쯤에서야 준비하기 시작하는 과목으로, 4등급 이상만 받으면 딱히 지장은 없는 과목이다. 나는 지금껏 3월, 5월, 6월 모두 같은 3등급 만을 받아왔었다(딱히 중요하지도 않아서 이제까지의 모의고사 글에서 다루지 않은 적도 있었을 것이다). 한 번쯤은 미리 성적을 올려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시험 보기 일주일 전부터 하루 딱 1시간씩만 투자를 했다. 그리고 보는 시험이었다. 긴장은 하지 않았다. 절대평가니까, 2등급만 맞자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한국사 시험을 보면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성적이 상위권을 달리는 친구도, 한국사 시간이 되면 대충 풀고 10분 만에 엎어진다. 15분이 지나면 거의 모든 학생이 엎어져서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20분 정도 풀고 남은 시간을 수요일에 연재할 시에 대한 구상(?) 비슷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이번 기회에 말해두자면, 나는 모의고사 일주일 전에는 연재를 잠시 중단한다. 그간 독자분들께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시험이 끝나고 채점할 때, 내 심장이 얼마나 철렁거렸는지 모른다. 첫 페이지에서만 4~5문제를 틀렸다. 진짜 준비했더니 4등급이 보이는 건 무슨 상황이람, 투덜거리며 나는 두 번째 장을 넘겼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는 단 두 문제만을 틀리고 채점이 끝났다. 결과적으로 2등급. 목표 달성이었다. 이러면 한동안 한국사는 안 해도 되겠지…? 애초에 안 하는 게 맞지만(?). 자판을 두들기다가 문득, 차라리 일주일 동안 투자한 7시간을 탐구에 투자했다면, 더 기분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교시 생윤
대놓고 말하겠는데 생윤은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다. 좋아하면 뭐 하나. 결과가 안 나오는데. 나의 희망학과가 철학과인 이유도 있고, 머릿속으로 사상가들끼리 싸움 붙이는 행위가 너무 재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7월에 이러한 나의 생윤사랑에 상응하는 성적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웠다. 수학과 국어에 투자한 시간 때문에, 공부의 시간분배가 무너졌었던 것이다. 시간조율도 중요하구나,라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만으로 넘어가기엔 이번 시험에서의 나의 생윤성적은 너무 뼈아픈 점수였다. 시간조율은 어쩌면 핑계일지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열심히 했다지만, 목표를 이뤘다지만 국어, 수학 모두 ‘낮은’ 2등급과 3등급이었으니까. 채점이 끝나고는 방학에는 정말 목숨 걸고 탐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6교시 세계사
2등급이 목표였다. 약한 부분이 확실하게 있었던 나였기에 1등급은 무리였고, 약한 부분을 둘째치고 나머지를 다 맞는다면 2등급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시험의 난이도는 다행히도 6모만큼 괴랄하지는 않았기에, 무난히 풀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약한 부분의 문제들. 사실 약하다기보다는 아예 대놓고 약점인 부분이긴 했다. 현대사와 중국 근대사. 마오쩌둥 관련 문제 하나, 태평천국 운동 관련 문제 하나, 러시아 혁명 관련 문제 하나. 러시아 혁명 문제의 경우 시험 직전 친구가 알려줬던 부분이라 간신히 고를 수 있었다. 문제는 남은 두 개의 문제들이었다. 뭐로 찍지? 생각을 하는데, 여태껏 내가 고른 답 중 3번의 개수가 가장 적음을 깨달았다. 1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근데 나는 두 문제 모두 3번을 고르지 않았다. 위의 사실을 시험 중 알고 있었음에도.
시험을 다 본 시점에서, 나는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시험 중의 나의 사고는 평소의 나와 다르다는 사실. 상식적으로 3번 선지가 가장 적으면 찍을 때 3번을 찍는 것이 이상적이다. 아니 거의 당연하다. 근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인천교육청(7월 학평은 인천교육청의 작품이다) 속임수일 수 있어’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사고를 하며, 오히려 3번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채점 결과, 해당 두 문제의 답은 모두 3번이었다. 찍은 걸로 후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실은 시험장에서의 나는 분명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내가 지속적으로 경험을 통해 최소한 수능 전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이 과목에 겁이 났다. 2문제를 틀리고 3등급이라니. 45점이 3등급이라니. 1 등급컷이 45점인 과목도 있는 마당에, 두 문제 틀리고 3등급은 너무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세계사라는 과목에 나는 이미 너무 깊이 발을 들이밀고 말았다.
2합 5는 맞췄다. 야호…., 가 나의 결론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