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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일기(1)

비둘기처럼 살고시퍼

by 김규민


방학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고3에게 있어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쉴 틈 없이 공부하는 게 당연한 시기. 한편으로는 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이라는 사실이 어른이 된다는 현실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아주 중요한 시기인 만큼, 계획도 꼼꼼히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나는 믿음직스러운 조수(?)를 영입했다. 이 조수의 이름은 지피티. 요즘 나는 이 녀석과 함께 계획을 짜고 있다. 나의 등급을 알려주고, 학원일정과 문제집을 알려줬더니 중요도에 따라서 시간을 분배해 주더라. 좋아하는 철학자의 보고서를 쓸 때도, 도저히 못 찾겠는 자료를 물어보면 어디서 알아내는지 다 알려주고, 검색보다 편했다. 너무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인간과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나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인사까지 하도록 만드는 이 녀석이 무서웠다.

아무튼 그렇게 계획을 짜면, 나는 최대한 그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려고 한다(브런치스토리를 알려줬더니 녀석이 자꾸 계획에 ‘브런치 글 정리하기’ 같은 걸 끼워 넣더라. 부담스러워서 없애달라고 했다). 계획대로 하면서 조금씩 나의 장단점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걸 못한다, 가 아닌, 이런 부분이 부족하구나, 가 잘 보이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국어의 페이스가 상당히 좋아져서, 일 등급도 가능하지 않을까? 같은, 괜한 욕심과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7모를 보고 내가 다짐한 건 방학에는 꼭 탐구를 해야겠다는 생각. 생윤은 시중에 판매되는 실전 모의고사를 샀고, 응시자수가 적은 세계사는 천대받는 과목이라(?) 반강제적으로 인강강사의 모의고사를 구매해야만 했다. 싫은 건 아니지만, 조금 비싼 건 아쉽다.

월, 수, 금에는 학교에 간다. 야자처럼 8시 10분부터 5시까지 하는 자습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야자 때보다 공부가 더 잘 되는 기분. 야자 때의 친구들도 그대로다. 그들이 있으면 나름의 힘은 나는 듯하다. 서로 열심히 하면서 성장하는 느낌이랄까. 종종 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해피엔딩이라는 전제 하에.


솔직히, 후달린다.


방학이 시작한 이후로 일주일간, 나는 1시 취침과 6시 기상을 반복하고 있다. 뭔가 대단해 보이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말을 우선 해야겠다. 나는 겁먹고 있다. 다가오는 수능은 강제적으로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만든다. 학교가 없는 날의 경우 나는 6시에 일어나면 샤워와 아침을 해결하고 지체 없이 동네의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은 9시에 열지만, 그 3층에 있는 독서실은 7시에 문을 연다. 시야 방해가 가장 적은, 가장 좋은 자리(모서리)를 차지하고, 공부를 시작한다. 10시에 학원이 있기에, 그때까지 공부를 한다. 부지런해 보일지도 모르는 이 모든 행동의 동기는 대학에 대한 열망도, 행복한 미래도 아닌, ‘두려움’에 있음을 강조한다. 두려움은 사람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어쩌면 몸소 실험하고 있는 걸지도. 그 와중에 하나 말해보자면 나의 실질적인 공부는 12시까지다. 1시까지는 일종의 고집과도 같은 나의 보상심리 때문에 발생하는 시간. 요컨대 놀다가 잔다. 그것도 피곤함을 무릅쓰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성격의 문제인지라.

남은 시간은 나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논술만으로 희망을 가지고 싶지 않다. 정시로 가고 싶다. 정시로… 마지막 기회. 잘 살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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