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요즘 화내는 사람을 상대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참고로 이건 나의 생각이지만, 고3이 다툰다면 그건 대부분 부모님과의 다툼이다.
‘다툰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나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줄지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부터 하는 말이 아직 철들지 않은 고등학생의 한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다.
고3이 되고 나서 선생님과 주변사람들에게서 들은 조언이 있으니, 그건 바로 ‘부모님과 싸우지 말아라’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볼까. 말을 강하게 하시는 편인 국어학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대충 ‘화내시는 부모님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라. 그냥 네, 하고 받고 넘겨라.’라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수학학원 선생님은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최근 새로운 감정을 내 안에서 발견했다.
부모님, 정확히는 엄마가 화를 내는 경우는 하나다. 나의 말이 엄마의 생각과 다를 때. 주제는 하나다. 공부와 관련해서. 절대 엄마는 인정하지 않으신다.(그리고 여기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나의 말을 믿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마는 사람이었다. 가족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한 명의 사람으로서 엄마를 보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냥 그런 성격의 사람이다.
부모님이 화내는 모습을 보면, 말 그대로 나는 지켜본다.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의 화는, 나에게 대꾸할 틈을 주지 않으신다. 조용히 엄마의 분노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끝나지 않고, 과거의 이야기를 들춰낸다거나 다른 주변의, 입시에 성공한 형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원래 같았으면, 고2의 나였으면 여기서 나는 화를 내거나 반박했을 것이다. 그래, 인정하겠다. 고2당시의 같은 상황에서의 나의 반박은 지금 생각해 보면 궤변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않기로 했다. 대답을 요구하는 식의 화를 내시면 조용히 ‘네’라고 대답한다. 기계식으로 말이다. 네, 네, 네. 화를 내시는 부모님은 나의 내면을 모른다. 한 귀로 흘러 듣는다. 모든 말을. 완벽한 방어체계다.
엄마라는 프레임이 벗겨지고, 한 명의 사람으로 보이는 순간이 오면, 그때 나는 생각한다. ‘그래, 저 사람도 아들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겠지.’ 너무 심할 때는 객년기인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객년기와 사춘기가 붙으면 객년기의 승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지금의 나는 사춘기도 아니고, 설령 부모님이 객년기라 할지라도 완벽한 방어체계가 있으니 괜찮은 일이다.
학업과 관련한 부모님과의 마찰은 의견이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마찰인지라, 누군가의 잘못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런 찰나의 평정심은 참으로 도움이 된다.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장담컨대 적어도 최근 4개월간 엄마와의 ‘다툼’에서 내가 화를 낸 기억은 없다. 정말이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나의 이런 깨달음(?)은 빛을 발한다. 의견이 맞지 않거나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친구가 있을 때, 마찬가지로 나는 ‘그래’라고 말하고 말을 아낀다. 어쩌면 그냥 의욕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부정하고 싶다. 그저 나는, 피곤한 게 싫은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능성이 있을 때만 행한다. 실리를 추구하게 되어버린, 어쩌면 슬플지도 모르는 태도를 나는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