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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꽃을 좋아하시나요

by 김규민

봄이 왔다. 꽃샘추위라고 하기에는 꽃을 아주 죽일 기세로 추운 적도 있었고, 아직은 불안전한 감이 있지만, 이제는 왔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뭐랄까, 봄이 왔다는 실감이 나에게는 도저히 나지를 않는다. 감상이 없다고나 할까. ‘아, 왔구나’ 정도.

꽃을 보기를 좋아한다. 몇몇 사람들이 ’ 꽃은 보러 갔어?‘라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난 아직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꽃은 길거리에서도 예쁘게 보이는데, 보러 가다니, 어디로? 피크닉 같은 어감이리라.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벚꽃은 모두가 좋아하는 봄의 대표 격인 꽃이다. 나 역시 벚꽃을 좋아하지만, 조금 다른 벚꽃을 좋아한다.

나는 웅덩이에 떠있는 벚꽃 잎을 좋아한다.

벚꽃은 귀엽다. 분홍빛을 연하게 띄고 있으면서도 그 본질은 분명 하얀색이다. 마치 너무 분홍색이면 눈에 뜨일까 걱정해서 자기 나름의 겸손을 떠는 것 같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은 또 어떨까. 눈과는 다른 느낌이다. 꽃잎은 눈보라만큼 격정적인데, 봄이라는 배경은 또 따뜻해서 아름다운 모순이 일어난다. 어쩌면 이런 모순을 사람들은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면 수능성적 잘 나온다던데.”

급식을 먹고 나오면서 친구가 한 말이다. 이런 헛소리는 누가 만들어서 퍼트리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

“에이, 헛소리하지 마.”

이렇게 말하고 친구는 흩날리는 벚꽃 잎을 향해 몸을 날리는 시늉을 한다. 농담, 친구끼리의 개그지만, 이 개그에는 나름의 웃시면서 슬픈 내면세계가 있으리라.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이야기를 엮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벚나무에 핀 벚꽃보다 벚꽃 잎을 더 좋아한다. 특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벚꽃잎들. 한 곳에 모인 그것은 영락없는 봄의 눈이다. 듬성듬성 있어도 좋다. 장난스러운 아이가 떨어뜨린 종이조각 같기도 하고, 자연의 색놀이 같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웅덩이의 벚꽃 잎을 좋아한다. 왜일까. 벚꽃은 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봄비와 눈(봄의 눈)이 함께 있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비가 그쳐 웅덩이가 생기고, 그곳에 떠있는 벚꽃 잎을 보면 왠지 모를 따뜻함이 내 마음에 퍼지곤 한다. 이건 확실하다.


목련도 좋아한다. 목련은 벚꽃과는 달리, 목련나무의 목련을 더 좋아한다. 특히 개화하기 전의 모습. 움츠리고 있는 목련잎은 마치 유럽의 어느 장인이 만든 양초 같다. 그 순간은 정말 찰나라서, 잘못하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다행히 학원에 오가며 양초모양 목련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목련나무 한 그루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목련 나무를 보면 하얀 목련은 아름답기만 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아래를 보면, 무거운 목련의 잎들이 떨어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나무 아래 꽃잎들은 변색된다. 마치 집에서 오래 방치하면 갈색이 되어버리는 바나나처럼. 사람들이 지나가며 밟게 되면 갈변한 잎들은 불명예스러운 무늬를 얻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다가도 나무를 올려다보면 여전히 아름답다. 도중에도 잎은 하나 둘 떨어져 가지만....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잎들은 떨어지고, 변색되고, 밟힌다. 이들은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더 슬픈 것 같다. 아직은 목련이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눈에 많이 많이 담아둬야 하지 않을까.


봄이라는 계절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뭘까. 없다. 굳이 찾아야 할까?

하지만 이런 건 있다. 봄이 되면 귀찮아진다거나. 나른해진다거나. 여름이나 겨울처럼 극단적인 온도의 계절에는 바빠서 오히려 계절에 대한 생각을 하는 일이 잦지 않다. 그러나 봄이나 가을 같은 조금 덥고(따듯하고) 조금 추운(시원한) 계절에는, 계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인간관계가 애매한 봄. 인간관계가 뚜렷해지는 가을. 수능이 있는 가을…? 올해 가을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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