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1943

유리알 염주를 굴리며 맑은 세상을 연주하고 싶었던 예민한 그를 추억하다

by 셔블

쌍 아본디오 골목을 내려와 검은 띠를 두른 하얀 팻말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아니, 노란 팻말이었던가? 이제는 기억이 뒤죽박죽 뒤섞인 터라, 그때가 2008년이었는지, 2010년이었는지, 또는 2012년이나 2016년 아니었을까 할 뿐 더 이상 자세한 기억을 꺼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 털어보면 나올 데이터는 이미 중요하지 않으니까.


현 주한 스위스 대사는 바젤 출신의 여자 사람인데, 부드러운 액센트로 듣기 좋은 편안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 같다. 얼핏 들으니 쌩이나 쌍으로 발음하지 않고 '장트'라고 발음하는 것 같았다. 롬바르디아 사람들은 '잔타분디'라고도 하니까, 아마도 슈비쩨라 도이치로 '잔트'라고 해야할 것 같은 그런 엄밀함도 늘 그렇듯 굳이 신경쓰지 않는다.


194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세를 나는 사랑하는 편이다. '잔타 본디오'를 내려와 갈림길에서 그 마을에 헤세의 무덤이 있노라는 이야기를 듣고 팻말 사진을 찍은 이유였을테다. 헤세가 아니었다면, 아마 티치노의 다른 소소한 동네들처럼 아본디오 역시 '찾아보니 여기였구나' 하며 지도에 잘 적혀있겠지 하는 그런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있을 지 모른다.


헤세는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를 생각하면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상상해 보곤 한다. 어머니를 그리는 많은 시들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어느 아트페어에서 잃어버린 헤세의 시집은 언제나 내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남으로, 남으로, 홀로 숲길을 걸어간 사람. 나는 지금 헤세를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하늘을 어떻게 그릴 건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한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아마 서너 번 정도나 참석했지 싶은 화실에서 연필로 사과나 벽돌을 끄적이고 있었던 1998년 경인 듯 하다.


'부루 라이또 요꼬하마'를 생각하며, 조금 파랗게 개인 겨울 아침 출근길을 차박차박 걷는 동안 문득 그 질문을 생각해 냈다. 한참을 걸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내가 그릴 하늘의 모습을 오늘 아침엔 그저 아주 길고 긴 그림자로 그리고 싶다고 잠정적으로 정해 보았다. 나는 정말 아무렇게 아무나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맑은 옥구슬, 아니 수정구슬을 실을 꿰어... 연주를 하겠다는 것은 헤세가 만든 것인데, (옥이니 수정이니 하는 것과 실을 꿴다는 것은 사실 내가 아무렇게나 짐작한 것이지만), 나는 자꾸 그의 그림 실력에 더 마음이 간다. 그가 맡았을 것 같은 숲의 흙 냄새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조만간 다소 나 답지 않은 성실하게 표시한 문서를 한 장 들고, 다소 나 답지 않게 옷차림에 약간의 신경을 쓴 다음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봐야겠다. '잔트 아본디오'에 대해 바늘이라도 하나 꽂아 볼 그런 흑심을 품은 연필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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