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촉, the untouchable

만 52세에 생각하는 숫자 5의 진실

by 셔블

옥균에 대한 짧은 글을 쓰고,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스위스로 떠나려고 준비 중인 조카와 긴 긴 통화를 한다. 킨다마-균 상은 1884년 12월 4일, 음력으로는 10월 17일, 저녁 7시 우정국 개국행사를 개화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시점으로 잡았다. 생각대로 된다면, '한방'이라는 마술, 아니 예술이 될 절호의 기회.... 조선의 '금구술' 김옥균이 어떤 연주를 하게 될지, 세계가, 무엇을 아는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밤 10시 "불이야!"로 신호탄은 쏘아올려졌다. 졌다고 한다. 하필 12월 3일에, 하필 '저녁 만찬'하러 간다며 누군가 고위급 인사가 기분 좋게 머리를 다듬었다더라는 그날에, 우물쭈물 하다 밤 10시 보다 이십 여분 늦게 '비상식적 비상'을 터트려버린 열나도록 비열한 윤석열이 겹쳐 떠오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감번호 0010 - 지금 특별한 날을 기념하려고 열차를 타기 위해 용산역을 향해 가고 있는 봄날같은 이 아침에 만나는 열 십(十)라니, 어떻게든 마지막 구슬을 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구(九) 다음은 십(10)이 맞는데... 어쩌면 그것은...


1884년 그날에 가장 당황하고 혼비백산했던 사람은 '민영익'이었다고 본다. 12.3 내란의 한동훈 격이랄까. “세간의 말과 달리 파리가 뉴욕보다 못하더라”며 막 세계일주까지 마지고 돌아와 척족의 차세대 리더로 촉망받던 그가 이름도 화창한 ‘개화’의 중추그룹이 일으킨 거사에서 불시 습격을 받았다. ‘아니, 나를?, 나를? 왜?, 진짜? 형들이? 감히, 나를?' ——- 피투성이로 쓰러지며 까무러쳐 버린 건, 출혈보다 치명적인 일순간의 정신적 충격이 더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만 같다. 밀려드는 양인들 때문인지 청나라에서 보내 준 해양 항만 출입국 전문가 뮐렌도르프가 구출하고 세계일주 끝에 가장 친하고 싶다 느꼈던 떠오르는 선진국 미국에서 이제 막 도착한 두살 위 형 알렌으로부터 치료를 받아 구사일생(九死一生)한 영익은 아마 일본을 끼고 돌며 자신을 배신한 균이 형, 영효 형 이 빌어먹을 자들의 친근함보다 봉감독을 따라 온 로버트패틴슨 처럼 기민하면도 신선함을 풍기는 서양 형들의 애자일(agile)함이 이제 더욱 확실한 비상안전망이자 전망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버렸던 모양이다. 임오군란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 온 누나같은 집안 고모 덕분에 홍콩을 들락거리며 정권 비자금 관리인으로 삼십년 수를 더 누리지만, 동포들 한테도 데이고 을사조약에 그나마 남은 희망과 정나미가 똑 떨어졌는지 최후 십년을 상하이 망명자(étranger in Shanghai)로 산 그를 생각하며, 몰타에 다녀 온 한동훈도 결국 미국이나 유럽에 머물며 비슷한 노년을 보낼 것 같다는 그저 웃자고 해 보는 유치하고 지나친 망상이 뇌리를 스쳐간다.


16세기-17세기-18세기,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 한 오백년 살자던 노래 속 세월은 크고 작은 파도가 이는 바다에 그대로 잠들어 있는 것 처럼 아득하다. 내 인생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는 21세기는 더욱 아득하게 느껴진다. 낱낱이 흩어져 버린 금구슬을 다시 모아 실에 꿰려는 것 같은, 막부시대에나 어울릴 듯한 후진 현실이 주위를 감싸고 질척거린다. 취리히에 도착해 쇼콜라와 슈바이처 도이치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잠들어 있을 조카에게 오늘 바젤행 기차시간을 묻는 메시지를 남긴다. 아무래도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리고 기차역으로 걸어 갈때까지 약 너다섯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헤세를 따라 검은 숲길을 걷고 싶다. 차라리 지금 눈 앞을 가로막으며 철길을 둘러 싼 이 산 저 산을 누벼도 좋다. 아주 오래 전 자주 꾸었던 꿈이 생각난다. 수로와 계곡, 수영장과 바다, 호수... 그 많은 물들로 풍덩 풍덩 뛰어들어 한 없이 헤엄쳐 나가고 싶다고 느끼던 그런 꿈들이다. 유학 갈 꿈이라는 해몽이 기억난다. 25년 쯤 흐른 21세기, 내 나이에서 그 만큼을 뺀 그 즈음 시절의 이야기들이 흩어진 구슬처럼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굴러다닌다. 홀수 중 유일하다는 불가촉 수 5와 이제 수명을 다한 십(10)이라는 숫자, 그 둘의 이야기만 길이를 알 수 없는 실에 그대로 꿰어져 있을 뿐이다. 온 몸의 힘을 빼고 물 위에 떠올라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 - 이것은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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