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곳
이번 렌터카 여행에서는 빠졌지만 2014년 프랑스 앵발리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앵발리드는 군사박물관, 그리고 나폴레옹과 그 가족, 유명한 장군들이 지하에 잠들어 있는 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파리 시내에서 보면 황금색 돔이 눈에 띄는데 그것이 교회 건물이다. 우리의 전쟁기념관과 현충원이 한데 모여 있는 셈이다.
앵발리드는 각기 다른 시대에 세워진 여러 건축물의 집합체다. 1670년 11월, 루이 14세는 노병과 불우한 퇴역군인들을 위한 시설을 건립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부상병 간호시설인 호텔이 1671년 착공돼 1706년 완공됐다. 프랑스 바로크 양식 대표적인 건축물로써 앵발리드 중심부에 위치한 교회는 1710년 완공됐다.
1800년 9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의 역사적 영웅인 튀렌 자작의 시신을 이곳 교회로 옮겨 안치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래 영묘로 쓰이기 시작했다. 원래 튀렌 자작의 시신은 역대 프랑스 왕들의 무덤인 생 드니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었으나, 프랑스혁명 때 역대 국왕과 왕비의 무덤을 파괴한 혁명파들이 그의 시신을 파리 식물원에 옮겨놓은 상태였다. 1808년에는 루이 14세 시절 명장인 보방(Vauban) 후작의 심장이 안치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 패배하고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돼 숨졌다. 프랑스는 영국과의 협의를 거쳐 나폴레옹 시신을 1840년 12월 15일 파리로 가져와 거국적인 국장과 함께 이곳에 안장했다. 그 후 20년이 넘는 공사 끝에 1861년 4월 2일에 지금처럼 안치되었다. 나폴레옹의 관은 적갈색을 띤 대형 사이즈로 예배당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채 그 위용을 자랑했다.
그 후 제롬 보나파르트, 조제프 보나파르트 등 나폴레옹 1세의 형제들과 페르디낭 포슈 등의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지휘한 장군들이 안장되었으며,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작곡가이자 군인인 루제 드 릴의 시신도 1차 대전 시기에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 독일 히틀러는 1940년 6월 28일 이곳을 방문해 나폴레옹의 관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12월 15일에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던 나폴레옹 2세의 시신을 이곳으로 이장하라고 명령하고, 12월 18일에는 군부에 소련 침공 계획을 작성하라는 총통 명령 21호를 하달했다. 나폴레옹이 이루지 못한 소련 정복을 꿈꾸었던 것일까? 하지만 히틀러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폴레옹 가족과 프랑스의 군사적 영웅들의 영묘로 사용되는 교회 지하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지역이다. 마침 프랑스 무관으로 근무하는 사관학교 동기생이 프랑스 국방부의 협조를 받아 지하 무덤시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아파트처럼 층층이 돌로 만들어진 무덤은 시신을 가로 형태로 눕혀 깊숙이 집어넣고 가로 세로 1m 정도 되는 그 겉면에 이름과 생애기간을 새겨 놓았다. 그걸 비추는 약간 어두운 조명은 영혼의 안식을 위한 배려인 듯했다. 그 옆으로는 심장을 보관한 시설도 보였다. 한 때 사람들은 영혼이 심장에 있다고 여긴 적이 있다. 그래서 심장은 보관하고 시신은 폐기한 것이다.
유럽이나 중동 쪽을 가면 마을과 무덤이 매우 가까이 공존하는 걸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이 늘 공존한다는 의식일 것이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은 열흘을 넘지 못하고, 권불십년(權不十年), 권력은 십 년을 넘기 어렵다. 우리의 인생도 100년을 넘기기 어렵다. 살면서 우리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죽음이 지금의 삶을 바르게 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코르시카 섬에서 원숭이라는 놀림을 받았던 어린 나폴레옹. 그는 걸출한 군인이자 황제로서의 삶을 누렸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외쳤던 나폴레옹도 죽음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역사에 남았다. 파리 시내 한복판 대형관 안에 누운 그는 죽음에 주눅 들지 않고 꿋꿋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당당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절대왕정 시대를 연 태양왕 루이 14세, 기사를 군인으로 대체했다. 국민 누구나 군인이 될 수 있는 제도, 국민 개병제 시대를 연 프랑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군인의 명예를 드높이고 예우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아는 듯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닪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시작하는 우리 애국가와 15절까지 있는 프랑스 국가의 1절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누가 진짜 우리를 지켜줄 것인 지를...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1절) 일어나라 조국의 아이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우리에 대항하여, 압제자의
피 묻은 깃발이 일어났도다.
들리는가 저 들판의
흉폭한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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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우리의 지척까지 와서
우리의 아들과 아내의 목을 베려 한다!
(후렴)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라! (대열을 갖추자!)
전진하라, 전진하라! (전진하자! 전진하자!)
놈들의 더러운 피로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계속)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영상
https://youtu.be/BUbcMTPoPuk?si=nTHwMLgZIRw4S-l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