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Bourgeois) 탄생지
성(Castle)은 중세 유럽과 중근동에서 만든 요새화된 귀족 건축물이다. 거주의 개념이 있어서 성관(城館)이라고도 한다. 요새화되어 있지 않은 궁전(palace), 중국 만리장성(萬里長城)이나 우리 북한산성(北漢山城)과 같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성된 성(城)과는 구별된다.
프랑스에서 꼭 이 성관(Castle)을 보고 싶었다. 성관은 프랑크 왕국의 르네상스 시대로 불리는 카롤루스 제국이 붕괴되고 수많은 제후 영주들이 할거하기 시작한 9세기~10세기에 발명되었다. 성관은 주위 지역에 영주가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이었으며, 공격군의 주둔지로서의 공격용 구조물이자 공격당했을 때 버티는 요새로서의 방어용 구조물이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런 군사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은 부르주아(Bourgeois)라는 용어의 탄생과 관련되어서이다. “성벽 안에 사는 사람”이란 뜻의 부르주아는 중상주의 시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며 프랑스혁명의 주동세력이다. 부를 축적했지만 귀족이나 왕족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 불만이 결국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룬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산업혁명에 이르러서는 마르크스에 의해 자산가는 ‘부르주아’로 통칭되며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수탈하는 타도대상으로 지목된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리 민족도 그 영향을 받아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말았다.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가던 중에 멀리 성이 하나 보였다. “오, 저기다. 성이 보인다.” 운전대를 쥔 나는 “저기 성을 보고 갑시다.”하고는 일행의 의사를 물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곳을 향해 차를 냅다 몰았다. 백미러로 일행의 눈치를 살피니 대꾸는 없어도 싫은 기색은 없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288㎞ 지점 랑그르(Langres)라는 도시에 소재한 Longe Porte라는 요새를 겸한 성(Castle)이 이었다. BC 1세기 갈리아 지방이던 이곳에 세워져 로마에 의해 복속되었고, 2세기 때의 로마 시대의 성문을 비롯하여 11∼12세기의 상마메스 대성당과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15∼16세기에 세운 탑 등이 남아 있는 역사적·종교적 유적지로써 1851년 개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돌로 만든 성은 오랜 풍파에도 여전히 튼튼해 보였고, 규모도 아주 컸다. 사람들도 꽤 많이 살고 있었다. 성 안의 골목길은 좁았지만 자동차 1대가 다니기에는 충분했다. 실제 집집마다 자동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다. 중세도시와 현대의 분위기가 묘하게 공존하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큰 쇼핑몰, 병원 등은 보이지 않는 대신 자동차가 해결수단인 듯했다. 성 안을 이곳저곳 다니며 살펴보니 외적의 침입이 빈번하던 시절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성 밖에 사는 사람들과는 차별적으로 안전과 생활이 보장되는 삶을 누렸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로소 왜 ‘성벽 안에 사는 사람’인 부르주아가 자산가를 지칭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용어 부르주아(Bourgeois)에 대한 현장실사.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자유여행의 뜻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부르주아의 대척점에 선 용어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 무산자(無産者). 고대 로마의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 즉 정치적 권리나 병역의 의무도 없고 어린이(Proles)만 낳는 무산자를 뜻하는 용어에서 파생했다. 마르크스에 의해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됐다. 공산주의 혁명의 주축이다. 레닌은 농노를 추가해 러시아를 공산화했다.
마르크스 이후 자본주의는 국가복지제도와 인권보장을 받아들였고 그의 예상과 달리 붕괴되지 않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해방 이후 숱한 위기에 처했던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축복을 넘은 천운이다. 여전히 과제는 있다. 가진 자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얻는 것이 더 많은 만큼 더 많은 기여를 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되 불평등의 갭을 줄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가 물이 넘치는 걸 막으려 더 큰 그릇을 준비한다면 주위의 목마른 자는 무얼 마실 수 있겠는가.
프랑스의 성(Castle)은 내게 옛날에 배운 것을 떠올리며 지금의 것과 견주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자유여행의 축복이자 당시를 돌아보는 추억의 행복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