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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8) - 프랑스 몽마르트르 묘지와 유령의 길

자유여행에서 마주한 잊을 수 없는 추억

by 생각전사

프랑스 파리 에펠탑 주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듯했다. 예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시간이 없어 주마간산으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었다. 이번 자유여행은 시간을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에펠탑 광장 주위에 한참을 머물며 구경을 했다. 꽃구경, 사람 구경, 분수 쇼 구경... 에펠탑 꼭대기를 손으로 잡는 시늉을 하고 사진 찍기, 에펠탑 가까이 가서 올려 찍기...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 보고 싶어졌다. 로댕 박물관까지는 걸어가도 될 만한 거리였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 빛 아래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박물관을 향해 걷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래서 나와 동서는 에펠탑 주변에 임시 주차해 놓은 렌터카를 가지고 나머지 일행과 합류하기로 했다. 한참 뒤 로댕 박물관에 차를 가지고 도착했는데 줄이 너무 길었다. 오늘 숙소까지 가야 할 거리와 시간을 보니 포기해야만 했다.


사실 2014년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한밤중이어서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그래서 가훈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돼라. 생각했으면 실천하라. 실천하되 윗사람에게는 사랑을, 동료에게는 믿음을, 아랫사람에게는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라고 정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의 오랜 직책 또한 생각과 연관이 있어서 ‘생각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스스로나 후배들이 생각전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것이 로댕의 조각상을 보고 싶어 한 이유이다. 다시 프랑스를 가게 되면 만사 제치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을 찾아갈 생각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 낭만적인 곳이다. 하지만 구글 맵을 따라 도착한 곳은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였다. 낭만의 장소가 아니라 죽음의 장소가 아닌가? 아뿔싸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찍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의도치 않게 공동묘지를 구경하고 말았다.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다니지 않은 자유여행의 함정, 예상치 않은 구경거리가 아니던가. 여기 공동묘지는 프랑스 혁명기 파리의 위생과 도시경관을 이유로 시내에 있던 묘지가 폐쇄되면서 1798년 이곳에 세워졌다. 프랑스 지식인 에밀졸라,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 화가 에드가 드가, 전설적인 러시아 출신 무용수 바슬라브 니진스키, 소설가 스탕달, 음악가 쇼팽이 잠들어 있다. 보고 싶었던 낭만의 몽마르트르 언덕은 보질 못했다. 결국 주변거리를 걸으며 길거리 화가들의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낭만에 취해 있는 젊은 연인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묘하게도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 머리에 무엇을 뒤집어 쓴 채 생각에 빠진 나체의 여인상이 있었다. 그녀는 왜 나체로 거기서 그러고 있게 됐을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인간 삶을 고뇌하고 있다면 그녀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달퍼하고 있는 것일까?


몽마르트르를 떠난 우리는 개선문과 센 강을 차로 돌아보며 숙소로 향했다.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처음에는 뉘엿뉘엿하더니 나중에는 아주 빨라졌다. 밤길 운전이 되었다. 운전대를 잡은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속도로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표지판을 따라가니 별문제가 없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트니 일행 중 몇 명은 비몽사몽 꿈속을 날아다녔다. 그렇게 숙소를 10여 Km 남겨둔 지점까지 이상 없이 달려갔다. 그런데 숙소를 아주 가깝게 남겨놓은 상태에서 내비게이션이 예상치 않은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오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비게이션을 믿고 안내하는 대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산속 길을 따라 얼마간 올라가다 보니 길을 누가 통나무로 막아 놓았다. “어, 이거 뭐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통나무를 치우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우리가 가는 길이 맞다고 알려줬다. 또 얼마간을 올라가니 외딴집이 한 채 나타났다.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빈집 같았다. 그 옆을 지나 계속 올라갔다. 거의 산꼭대기였다. 때 마침 그 산 언덕 위로 휘영청 큰 보름달이 떠올랐다. 내 생애 그렇게 크고 동그란 달은 처음이었다. 붉고 주황색 기운이 감도는 환한 보름달이 우리 일행을 비추기 시작했다. 달빛 아래 차를 몰고 앞으로 가면 갈수록 길은 더 좁아졌고 나무와 수풀은 더욱 우거졌다. 차를 돌릴 수 없는 아주 좁은 길을 따라가다 다행히 차를 겨우 돌릴 수 있는 약간의 공간이 나타났다.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그 공간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다행히 차가 빠지지 않았다. 후진과 전진을 몇 번 하여 차를 마침내 돌렸다. 그때 만일 차바퀴가 빠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이미 차에 울려 퍼지던 음악은 누군가에 의해 꺼진 상태였고, 꿈나라를 헤매던 일행은 놀란 토끼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의 운전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방금 올라온 그 길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갔다. 내비게이션이 오작동하던 장소에 도착해서 숙소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한 뒤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는 2층 다락방이 딸린 오래된 집이었다. 입구에는 사용하지 않는 커다란 우물이 있고 집 앞 골목에는 청년 몇 명이 앉아서 숙소에 도착하는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 밤은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잤다.


왜 멀쩡한 내비게이션이 그곳에서 오작동을 일으켰을까? 만일 우리가 그 좁은 길을 계속 따라갔으면 무엇을 만났을까? 왜 하필 그때 보름달이 그렇게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까? 그 길이 정말 유령의 길이었을까?


몽마르트르 묘지, 프랑스의 크고 환한 보름달, 유령의 길(?). 이 모두 다 자유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채 마주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끝//

손가락으로 에펠탑 들어올리기 신공
소설가 모파상이 미워했던 파리 에펠탑
죽음을 애달퍼하는 몽마르트 묘지의 나체 여인상
프랑스 숙소 앞 우물. 물은 말라있었다.
2층 다락방으로 가는 계단
2층 다락방 침대의 붉은 천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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