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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6)-달콤 복잡한 초콜릿의 나라 벨기에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by 생각전사

벨기에는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프랑스로 가는 여정에서 잠시 들른 도시다. 브뤼셀 시내를 활보하고 유명 와플을 사 먹고 초콜릿 가게에 들러 초콜릿 몇 개를 샀다. 이때까지만 해도 초콜릿은 달콤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초콜릿은 북위 20도 남위 20도 열대 지방의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카카오나무 열매를 발효하고 말리고 볶고 빻아서 카카오 버터와 설탕, 우유 등을 섞어서 만든다.


원산지는 라틴아메리카 아마존 열대우림지역으로 고대 마야족, 아스텍족이 원조다. 이곳의 카카오 열매와 이들의 전통 제조 방식이 유럽으로 건너가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오늘날의 초콜릿이 되었다.


벨기에 초콜릿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고디바(GODIVA)다.(지금은 튀르키예 이을드즈 홀딩스 Yıldız Holding 자회사). 고디바 창립자 조셉 드랍스(Joseph Draps)와 그의 아내 가브리엘 (Gabriel)은 1926년 브뤼셀 그랑플랑스(Grand Place) 한 모퉁이에 작은 가게를 냈다. 어릴 때부터 가족기업의 일원으로 함께 일하던 세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았고 1945년 영국 벤틀리 지방 영주의 아내 레이디 GODIVA 이름을 따 브랜드 명을 변경했다. 고디바는 남편인 영주가 제안한 대로 주민들 세금을 줄여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활보했고, 의리를 지키려 한 주민들은 고디바의 나체를 보지 않으려고 창문에 커튼을 쳤다는 유래가 있다. 내용이 다소 허황되고 자못 극적이어서 고전적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고디바 초콜릿의 상표에는 말 탄 나체의 여인이 등장한다. 스토리 마력 덕분에 그 모습이 외설이 아닌 고귀함과 희생, 사랑의 표상으로 각인되는 것도 의외다.


초콜릿은 농장, 공장, 판매점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우리 입속에서 달콤한 풍미를 뽐낸다. 카카오나무를 기르고 열매를 수확하고 말리는 1차 산업은 서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농장에서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거친 열매를 수입해 볶고 분쇄하고 첨가물을 섞어 가공하여 카카오 매스를 만드는 2차 산업은 유럽국가가 장악하고 있다. 이 분쇄분야 1위는 네덜란드다. 스위스는 밀크 초콜릿 강자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고유의 초콜릿을 브랜드화했다. 미국의 허쉬는 2차 세계대전 때 카카오 버터 대신 식물성 기름으로 잘 녹지 않는 초콜릿을 개발해 미군에 납품해 큰돈을 벌었다.


초콜릿에도 어두운 역사가 있다. 유럽은 남미의 인디오를 카카오 생산에 투입해 수탈했고, 이들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돈으로 산 아프리카 흑인노예를 부렸다. 지금은 저임금의 아동노동이 존재하는 현장이다. 카카오 열매는 70% 이상이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된다. 코트디부아르(Republic of Cote d'Ivoire)가 1위이고, 가나(Republic of Ghana)가 2위다. 이들 나라의 카카오 농가 80%는 하루 3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가난한 이들 국가는 카카오 열매 값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며 2020년 COPEC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이들 국가의 카카오 현물시장이 아니라 선물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바람에 오히려 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 분업과 착취, 이익의 불평등 분배구조의 작동이 초콜릿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초콜릿이 들어온 것은 조선 고종의 아관파천 시절로 알려져 있다. 고종의 음식 시중을 들던 손택이라는 여인이 초콜릿을 진상했다고 한다. 당시 저고령당이라고 불렸던 초콜릿은 서양문물 반대세력에 의해 소의 피를 흑설탕에 갠 오랑캐의 음식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초콜릿이 일반인에게 본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때다. 당시 미군들이 나누어주는 초콜릿을 처음 맛본 아이들이 미군을 보면 “헤이, 기브 미 초콜릿!”을 외쳐댔다는 건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1968년에 해태와 동양제과는 우리나라 최초의 초콜릿을 생산했다. 해태제과의 ‘해태쵸코렡’이 출시되었고 동양제과의 ‘No.1 초콜릿’과 ‘님에게’가 생산되면서 초콜릿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롯데제과는 1975년 ‘왔다바‘ 등으로 초콜릿 제조에 참여했고, 스위스풍의 ‘가나 밀크 쵸코렡’ ‘가나 마일드 쵸코렡’으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동양제과는 1974년부터 판형대신 동그란 초코파이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롯데제과는 1983년 막대모양의 빼빼로를 출시했다. 특히 초코파이는 오늘날까지도 판형 초콜릿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초콜릿 나라 벨기에를 추억하면서 들여다본 초콜릿은 원래 떫고 시고 쓴 카카오를 주원료로 하는 먹거리다. 그것이 우리 입속에 들어와 달콤한 맛을 내기까지는 상상 이상의 스토리와 여러 손길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긴 세상에 초콜릿만 그러하겠는가? 작은 것 하나도 우리가 아는 것, 느끼는 것 이상이다. 그러니 어찌 함부로 안다고 할 것이며, 어찌 이러쿵저러쿵 말을 지어낼 수 있겠는가.


초콜릿을 보며 그저 세상을 가벼이 하던 때가 부끄러울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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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초콜릿 가게
벨기에 시내


벨기에 광장
유명 초콜릿 고비다. 지금은 지금은 튀르키예 상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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