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 증권거래소 설립
햄버거의 고장 독일 함부르크(Hamburg)를 출발한 지 3시간여 만에 네덜란드 국경을 넘었다. 그 순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도로에 오렌지색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노란색과 붉은색이 섞인 오렌지색. 독특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잠시 들러 샌드위치를 먹은 고속도로 휴게소조차 색감과 디자인이 세련돼 보였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나라, 강원도와 경상도를 합친 것보다 작은 나라, 생소한 이 나라에서 '연결자'라는 코드를 발견한 것은 의외였다.
낮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네덜란드(Netherlands). 바다보다 육지가 평균 3m가 낮은 나라. 그래서 바다를 뚝으로 막고 풍차로 물을 퍼올려 땅을 개간한 바람의 나라 풍차의 나라. 염분이 많은 간척지에서도 잘 자라는 터키산 튤립을 수입해 연간 90억 송이를 생산해 수출하는 튤립의 나라. 그래서 튤립은 신의 한 수로 보인다.
지금은 인구 1728만 명의 1.3배인 2280만 대의 자전거가 활보하는 자전거의 나라.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국부론을 쓴 아담스미스(Adam smith, 1723~1790)에게 영감을 준 나라. 최초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금융자본주의의 나라. 스페인과 독립투쟁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의 나라.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표류했던 하멜의 나라.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도운 히딩크의 나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 스페인은 마침내 800년 동안 지배했던 이슬람세력을 몰아냈다. 가톨릭 왕국을 선포하며 유대인도 쫓아냈다. 이때 유대인들은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네덜란드로 향했다. 그들은 바다를 막아 땅을 만들고 스페인 북부 천일염을 수입해 청어를 절여 유럽에 팔았다. 인도의 후추 등 향신료를 수입하고 상품을 팔기 위해 배를 만들고 14개의 회사를 통합해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의회가 주도했다. 스페인과 독립투쟁도 도왔다. 네덜란드 왕이 영국의 황제가 되자 영란은행을 만들고 영국의 해외진출에 돈줄을 자처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탄생이다. 1611년 네덜란드에 세계 최초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졌다.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자본주의.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Shylock의 대변신이다. 유대인의 자본은 강대국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 월스트리트를 주무르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가 내 주식의 향배를 결정하고 있는 엄중한 현실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유럽바다를 헤엄치던 청어가 만들어낸 자본주의.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경이롭지 아니한가. 모든 게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지금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숙여진다.
네덜란드는 지구촌 한 구석에 살고 있는 내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면서 나이 들어가는 내게 남은 마지막 과업이 연결자의 소명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도 주었다. DNA의 연결은 자식들의 몫이지만 그들이 성장하는 걸 돕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우리 세대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 공중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은 사회적 책무라고 여기며 노력 중이다. 우리는 생산자이기보다 소비자로서 혜택을 더 많이 누리며 살아간다. 빛과 공기, 물과 강, 바다, 흙과 토지, 산과 숲이 만들어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이 모든 자연의 생산물들을 연결하는 연결자일 뿐 인지도 모른다.
여행은 동굴에 고립되어 편협할 수 있는 내게 늘 새로움과 영감을 준다. 네덜란드에서 발견한 코드, 연결자도 그중 하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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