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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3)-독일 중세기사의 집

투박함과 삼계탕이 준 감동

by 생각전사

폴란드를 떠나 묵은 독일 첫 숙박지는 기사의 집(House of Knight)이었다. 현관 입구에 세워둔 아주 오래된 기사 갑옷과 투구가 제법 중세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커다란 거실과 소파, 아주 크고 투박한 나무로 만든 식탁, 덜컹거리는 철제 침대, 흰색 콘크리트 벽면에 철물 구조를 힘껏 박아 매단 것 같은 조잡한 창과 큰 도끼... 꽤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왠지 눈에 거슬렸다. 세련되지 않은 것들이 간혹 보여주는 근거 없는 당당함, 자신감... 뭐 그런 걸 목격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 같은 거... 아무튼 그랬다.


우리는 사실 이 집이 아니라 10여 분 전에 지나온 전형적인 독일 마을의 어느 한 집으로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그 마을이 아주 세련돼 보였고,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그곳을 지나 여기에 도착하고 말았다. 안락 따위와는 거리가 먼 숲 속의 투박한 이 집에.


그렇다. 자매들의 얼굴이 일그러진 건 아주 순간이었다. 곧 화장실에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된 후로는 더욱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집을 예약한 남자의 볼멘소리가 높아졌지만 공허했다. 오히려 침묵만 못했다.


이게 다 숙박 부킹 사이트에 올라온 수준급(?) 사진과 뽀샾의 위력, 확인되지 않은 댓글의 결과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것도 다 추억인 것을... 만사를 포기하고 이내 정신을 가다듬은 자매들은 유럽 산천을 달리던 닭을 손질해 삼계탕을 끊여냈다. 한국에서 가져간 한약재가 큰 몫을 한 건 부인할 수 없지만 닭 효과가 더 컸다. 유럽의 닭은 우리 양계장 개별 닭장 안 A4 용지 크기만 한 곳에서 거의 죽지 못해 자란 닭과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뼈가 굵고 튼튼한 데다 고기가 쫄깃쫄깃하고 양도 푸짐했다. 닭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전혀 없었다. 내가 먹어 본 삼계탕 중 첫 손에 꼽히는 맛이었다. 유럽의 소고기, 돼지고기도 싸고 맛있지만 유럽 평원을 뛰어다닌 닭고기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유럽 닭고기의 환상에 젖어 헝가리에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치킨집 튀김 닭을 사다 먹었는데 한국의 양계장 닭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뼈가 부서지는 형편없는 것이었다. 어디 가나 함정은 꼭 있다.


그래도 기사의 집은 내게 흥미로웠다. 기사의 갑옷은 장식용이었지만 사진 찍기에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벽에 매달린 도끼와 창도 실전용이 아니었지만 중세 백마 탄 기사를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주인장의 기사의 집 콘셉트상 빠져서는 안 될 소품으로 제 몫을 나름 하는 셈이었다. 제일은 숲이었다. 숲엔 큰 나무도 많고 덕분에 공기도 맑았다. 어른이 두 팔을 크게 벌려도 다 안을 수 없을 만큼의 큰 소나무들이 집 마당에 가득 하늘로 쭉쭉 뻗어있었다. 이름 모를 새들도 지저귀었다. 소쩍새 소리도 들렸다. 이튿날 아침에는 지나가는 소나기에 후드득 우박마저 떨어져 유럽의 아침이 특별해졌다. 독일의 첫 숙박은 그렇게 끝났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해방이자 새로움의 연속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해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독일 기사의 집이 딱 그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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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사의 집에서 본 아름드리 나무
문 앞에 서 있는 중세기사 갑옷, 숙소 안에 설치된 도끼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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