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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1)-렌터카 여행

유럽에 동그라미를 그리다

by 생각전사

자동차 유럽여행은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공직에 머무는 동안에는 기회가 오질 않았다. 그러다 동서가 2022년 폴란드에 근무하게 되면서 같이 여행을 하자는 제안이 왔다. 그 때 나는 공직에서는 물러났지만 한 회사의 CEO를 맡고 있어서 20여일 동안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다는 생각에 회사와 얘기를 하여 부사장 대행체제를 운영하가로 했다. 중요회의와 결재는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이미 구축했으니 업무가 지연되거나 펑크날 위험은 없었다. 인생이고 여행이고 어차피 모험이 아니던가. 나의 유럽 렌터카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여행에서 우리의 발이 되어준 놈부터 소개하겠다. 미국 Ford사에서 만든 8인승 승합차. 수동 6단 기어의 6만 Km 정도 달린 비교적 젊은 놈이 체코공항에서 우리를 반겼다. 20여 일 간 6576Km를 달리면서 우리를 온갖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러고도 고장 한번 나지 않았으니 말썽 ZERO의 고마운 놈이다. 오히려 자동 기어의 안일함에 빠져있는 투박한 운전자를 만나 평탄한 길에서 덜컹거리기도 하고 길도 없는 프랑스의 음침한 숲 속으로 내몰리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스위스 체르마트 좁은 산 길을 오르던 중에는 중앙선을 넘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막무가내 캠핑카에 왼쪽 백미러를 한방 얻어맞아 거울이 조각조각 금이 가는 참사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놈은 그 상황에서도 투정 부리지 않았고, 그 후로도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았다. 참 과묵하고 성실한 놈이다.


이 놈을 타고 달리면서 EU체제의 유럽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EU 국가 국경선은 아무런 제재가 없다. 그냥 도로를 따라 운전해 가다 보면 국가가 바뀌어 있다. 국경선이 어딘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도로의 상태나 넓이, 교통 표지판 문자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결정적인 것은 휴대폰으로 날아오는 문자다. 국경선을 넘을 때마다 우리 외교부에서 메시지를 보내 준다. 주재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 연락처, 코로나 관련 안내 문자 등이다. 그때 오호라 방금 국경선을 통과했구나 한다. 통행료도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여 별 불편함이 없다. 다만,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 넘을 때 국경 담당 경찰의 여권 제시 요구와 간소한 출입국 절차가 있었다. 하지만 까다롭지 않다. 모든 사람의 여권을 제시하고 탑승 상태로 대기하면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짐을 보자는 경우도 거의 없다. 외국 생활을 많이 한 동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여권 파워 덕분이라고 한다.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 입국 때 한 외국인 차량이 경찰의 짐 해체 수색 요구에 난감해하는 걸 목격해서 인지 더 실감 났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갈 때는 열차에 차를 싣고 산을 뚫은 터널을 지나갔다. 처음엔 몰랐다. 철로 옆에 차들이 대기를 하고 있어서 기차가 지나기를 기다리는 차량 행렬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열차에 올라타는 줄이었다.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지불하듯 카드로 결제를 하고 줄줄이 올라타서 시동을 끄고 가만히 있으면 열차가 데려다준다. 불철주야 움직이던 이 놈도 졸지에 깜짝 놀랄 서비스를 받은 격이다.


그렇게 이 놈이 달린 체코-폴란드-독일-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헝가리-슬로바키아-체코로 이어진 궤적을 이어보니 동그라미가 그려진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유럽 동그라미 여행. 렌터카 이 놈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은 어디서 열 일하고 있을지 모를 이 놈의 안전 운행을 기원한다.


참고로 이 놈을 빌리고 보험을 드는데 210 여 만원, 기름 값으로 77만 원가량이 들었다. 우리 식구들이 돌면서 이것저것 욕심을 부리며 먹은 것에 비하면 아주 단조롭고 검소한 영수증이다.


자유라는 이름의 동그라미 여행. 자, 그럼 체코공항에서부터 출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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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동그라미 여행의 공로자, 포드사 8인용 승합차(6단 수동기어)
유럽여행의 궤적을 마저 그리니 동그라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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