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 푸른빛에서 태양을 보다
새하얀 만년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갈라진 틈새로 흰빛이 갇혀 서로 오래 엉킨 탓인지 맑고 푸른 형광색 빛이 났다. 장관이다. 이 태고의 광경을 차창에 펼치며 기차는 융프라우흐요 정상을 향해 톱니 선로가 놓인 3선의 철길 위를 거침없이 달렸다.
거친 자연에 도전장을 내밀고 깊고 높은 산을 오르고 또 오르다 깎아지른 거대한 암벽에 맞닥뜨려서는 좌절 대신 그곳에 구멍을 뚫고만 인간의 도전과 투지가 놀라웠다. 오호, 이 얼마나 만년설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란 존재가…
마침내 융프라우흐요 전망대에 도착했다. 해발 3454m.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태양이 밝게 빛났고 그 아래 만년설이 융프라우흐요 주변에 한 없이 펼쳐졌다. 햇볕을 받은 눈은 더 희게 빛났다. 이런 날은 독일까지 보인다고 한다. 흐린 날도 많다는데 시운이 좋았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여 마셨다. 차고 깨끗한 공기가 코로 들어왔다. 폐까지 시원해졌다. "후우" 날숨을 쉬니 살아오며 쌓였던 온갖 찌꺼기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후련했다. 다시 맛보기 힘든 그 공기를 또 한 번 힘껏 들여 마셨다 천천히 뱉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전망대에서는 신라면을 팔고 있었다. 만년설이 펼쳐진 이국의 땅에서 얼큰한 우리 라면이라니. 흠,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역시 대한민국 라면 맛이 일품이다. 외국인들도 너도나도 좋아라 먹는다.
신비로운 만년설과 얼큰한 라면 맛을 뒤로하고 아쉬운 하행선 기차를 탔다. 기차는 올라오던 반대편 코스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동안 산과 바위, 흰 눈 밖에 보이지 않더니 하늘로 곧게 뻗은 침엽수림이 나타났다. 높은 산들이 바람을 막아준 덕분인지 평평한 곳이든, 비탈진 곳이든 나무들은 햇볕이 비치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곧게 솟아있었다. 좀 더 내려오니 드문 드문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활엽수와 겨울에도 초록빛을 잃지 않은 풀들이 대지를 점령했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계곡물은 점점 수량이 풍부해졌고 그 폭도 넓어졌다. 그런데 산 정상 바로 아래를 지배하던 곧은 침엽수들은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어쩌다 보이는 것들은 활엽수들과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들 틈바구니에서 영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초록을 먹는 짐승들과 인간이 모여 사는 큰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 정상에서 고산증에 시달린 아내와 막내가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곳. 인간, 그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곳이다. 마침내 나는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그곳에 닿았다. 세상 찌꺼기가 코로 들어와도 숨쉬기가 편했다. 순간 인간의 진화 지점이 여기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융프라우흐요 등산길에선 인간의 위대함을, 정상에선 태고의 신비로움을, 하산 길에서는 생명의 진화를 목격했다. 빙하기를 지나 점점 생명이 풍요로워진 수 억년의 세월이 하행선에 그대로 펼쳐진 알프스. 고도가 낮으면 대지의 기운이 힘을 썼고 거기에 햇볕이 비치면 생명이 움텄다. 그렇지 않은 곳은 눈과 얼음이 지배했다. 그렇다. 진화의 뒤에는 태양이 있었던 것이다.
스위스 융프라우흐요 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장엄한 자연, 지구를 비추는 빛의 존재를 새삼 실감한 길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듯 하지만 축적된 시간이 여전히 지구상에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