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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13)-유럽 맥주 여행

나들이 맥주맛을 알어?

by 생각전사

여행 중 들른 유럽의 모든 대형 쇼핑몰에는 맥주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독일병정을 닮은 맥주들은 병뚜껑 철모를 뒤집어쓰고 진열대에 열 맞춰 일렬로 서있거나 분열 대형의 박스에 오와 열이 흐트러짐 없이 서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인 내게 이렇게 외치는 듯했다. "헤이, 코리안. 니들이 맥주 맛을 알어?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맥주 고수나 마니아를 빼고 대다수 술꾼은 맥주를 소주에 타 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소폭', 이른바 소주 폭탄주다. 사실 '소폭'은 양주폭탄주 ‘양폭'의 아류로 등장했지만 '양폭'의 퇴장을 불러온 민중의 술이다. 양폭'은 너무 비싼 데다 독하기까지 하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서민의 술이 아니라 자본가의 술이요, 접대의 술이요, 따라주는 자나 받는 자가 어깨를 으쓱하는 권력의 술이다. 그래서 자본과 권력의 술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런 '양폭'의 허황된 권세를 물리치고 '소폭'이 술꾼들 탁자 위에서 '술부림?!’을 시작한 것은 아마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아닐까 한다. 어쩌면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IMF가 계기일 것이다. 한 때 군납 양주 패스포트 Passport, VIP, 섬싱스페셜 Something Special, 스카치블루 Scotch Blue12년 산 때론 17년 산이 양주잔에 담겨 암반수를 길어 올려 만들었다는 하이트 맥주, 시원함의 극치 카스 맥주 속으로 풍덩 빠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호기롭던 시절 대범함을 미덕이자 명예로 여긴 자는 비싸디 비싼 밸런타인 30년 산을 폭탄주로 말아 돌리는 무모한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그래서 '양폭'은 돈과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한국 술꾼들의 고질적인 말아먹는 습성으로 인해 맥주는 자신의 고유한 맛과 풍미를 내세울 기회조차 찾기 힘든 시절을 꽤 오래 버텼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맥주의 또 다른 고난의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서울 영등포에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 기린 맥주가 ‘쇼와기린맥주'를 세웠다. 이들 맥주회사는 광복 후 적산(敵産)으로 분류돼 미국 군정의 관리를 받다가 1951년 민간에게 매각되어 현재의 하이트진로(전 크라운맥주)와 OB맥주(전 동양맥주)가 되었다. 맥주는 한 때 조선의 전통주 명맥을 끊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주류 침탈의 앞잡이로 오해되기도 했다. 이런 맥주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날 술꾼들은 뭐든 말아먹으면서 제법 점잖은 말로 맥주를 두 번 죽인다. “한국 맥주는 맛이 없어"


맥주는 누구인가? 이를 알려면 술의 역사를 먼저 살펴야 한다. 술은 과일주, 곡주, 위스키 순으로 발전해 왔다. 술을 최초로 만든 이는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옛날 원숭이가 숨기고 잊어버린 과일이 자연발효된 게 최초의 술이라는 것이다. 그 기원이 인류의 시작보다 빠를 수 있다는 얘기다. 맥주는 보리나 밀로 만든 맥아, 홉, 물을 섞어 발효한 것이다. BC 4200년경 수메르인들이 원조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맥주가 등장하는데 제108조에 "맥주집 여인이 맥주값으로 곡식을 마다하고 은전을 요구하면 벌을 받고 물속에 던져지리라."라고 경고하는 구절이 있다. 맥주는 그 후 이집트와 로마를 거쳐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맥주는 체코,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아일랜드,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에서 크게 발전했다. 맥주는 상온 섭씨 10도~25도에서 숙성하는 상면 발효 아일(Ale)과 10도 저온에서 숙성하는 하면 발효 라거(Lager)로 나뉜다. 아일이 위로 뜬 물질들 덕분에 묵직하고 다양한 맛을 내는 반면 라거는 아래로 가라앉아 깔끔하고 청량한 맛을 낸다. 같은 브랜드라도 제조방식에 따라 맛이 다르다.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프랑스 블랑 Blanc, 네덜란드 하이네켄 Heineken, 덴마크 칼스버그 Carisberg, 벨기에 호가든 Hoegaarden, 아일랜드 기네스 Guinnes, 독일 벡스 Becks, 체코 코젤 Kozel,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다양한 맥주를 시음할 수 있었다. 캔보다 병맥주를 선택해 신선함을 우선시했다.


그 결과, 세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맥주의 거품이 주는 부드러움과 목 넘김에서 오는 풍미를 소주에 양보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맥주는 저 마다 맥주로서의 존재감이 분명히 있으니 마음대로 평가하지 말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맥주는 신선함이 생명이니 캔보다는 병맥주를, 수입품보다는 현지생산품을 마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마트에서 파는 벨기에 호가든이 전라도 광주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곰표 밀가루가 미국 맥주회사와 합작해 밀 맥주인 곰표맥주를 만들어 팔고 있다는 사실도. 제조생산은 롯데칠성음료에서 한다. 수제 생맥주를 만들어 파는 곳도 120개가 넘고, 이런 생맥주 시장을 겨냥해 제주맥주가 미국회사와 손잡고 생맥주를 대량생산해 팔고 있다. 우리나라 맥주업계도 상상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셋째, 맥주가 뼈 건강, 신장기능 도움, 암과 심혈관 질환 예방, 콜레스테롤 조절, 소화개선 등 건강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많이 마시면 독이라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번 유럽 여행을 하면서 과한 의욕의 맥주기행 탓에 20여 일 끝 무렵에는 맥주가 보기도 싫어지고 말았다. 특히, 체코에서 대망의 체코식 족발 꼴레뇨와 수제 생맥주를 기대에 차 주문했는데 지친 위장에서 받지를 못해 단 한 모금만 마시고 다른 이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술에는 장사가 없다.


이번 유럽 맥주 여행을 통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모든 사물에 역사가 깊고 스토리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되었든 함부로 발로 찰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좋은 것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절감했다. 그렇다. 과함이 모자람만 못하니 모자란 것이 도리어 축복이라는 뜻이리라.


참, 이건 나만의 비밀인데 내가 마셔본 맥주 중 최고는 체코 코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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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코젤
프랑스 블랑. 지금은 폴란드에서 생산
헝가리 드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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