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묵상(默想)
삼각지
돌아가는 삼각지
여전히 6~70년대식 건물이 현대식과 공존하는 곳.
그 골목골목 크고 작은 식당이 즐비하다. 유명한 차돌박이집, 곱창집, 주꾸미집, 고등어구이 백반집, 대구탕집, 순댓국집, 잔치국숫집, 삼겹살집, 차돌된장집, 콩나물국밥집, 홍어 삼합집 등등
그 식당들이 애용하던 쌀집이 문을 닫았다. 주인장 할아버지가 무슨 연유인지 이별을 고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만난 적이 없다. 아니 그 골목을 셀 수 없이 다녔으니 만난 적은 있을지 몰라도 누군지 모른다.
그분이 이별을 고했다. 35년간 쌀가게를 이용한 이웃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별을 고했다. 그 쌀가게에서 판 쌀로 지은 이웃 식당들의 밥을 꽤나 먹고 다녔었는데… 그 밥심으로 치열했던 시절을 버티었었는데…
나는 삼각지를 여러 번 떠났다 다시 돌아왔다. 그때마다 따뜻한 이별을 고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또 다른 나는 아직 삼각지를 떠났다고 생각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 내가 진짜 떠날 그날이 오면 따뜻한 이별을 고할 수 있을까? 떠날 때를 제대로 알기나 할까?
이웃 식당들은 이제 할아버지 쌀이 아닌 다른 쌀로 지은 밥을 내올 것이다. 세월은 야속해도 할아버지 이별은 따뜻하다.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무어라 말하기도 조심스러워 따뜻한 이별만을 생각하게 된다. 삼각지 골목 쌀가게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마음과 함께.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은 가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
삼각지
돌아가는 삼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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