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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동의 추억

풍요 속에 사그라지는

by 생각전사

남선리 남쪽 너머에 한 마을이 있다. 세동이다. 남선리는 계룡시에 속해 있는데 세동은 대전시 유성구다. 오랫동안 그 마을 옆을 지날 때마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게 정겨워 보였었다. 하지만 “언제 한번 가봐야지"하는 마음만 있었을 뿐 기회가 없었다. 아니 딱히 가볼 이유가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계룡대 시절 끝 무렵인 10월 어느 오후. 그날따라 햇살이 유난히 빛났고, 봄과 여름을 머금은 단풍나무, 은행나무가 가을을 한껏 품고 군락을 이룬 억새풀들은 바람결에 흐드러진 춤을 추고 있었다.


“어디 갈까?" 흔들거리는 억새풀과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잎이 내게 속삭였다. "그래 어디든 볕 속에 걷자. 어디?" 순간 세동이 생각났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 한번 가보자. 전에 본 계곡으로 난 그 오솔길을 따라가면 세동으로 갈 수 있을 거야"


군인 교회 옆길을 돌아 예비군훈련장 가는 길로 가다가 왼편 숲 속 오솔길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길이 펼쳐졌다. 키 큰 나무들이 터널처럼 주욱 늘어서서 제법 따가운 오후 햇볕을 막아줬다. 공기가 맑고 시원해 기분이 상쾌해졌다.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왼쪽 잡목들 사이로 골프장이 보인다. 계룡골프장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540m짜리 13번 롱홀이다. 저 코스에서 골프 칠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 길이 있고 사람이 다닌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보는 앵글이 달라지니 익숙한 골프장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저마다의 앵글과 저마다 생각 속에 사는 게 맞는가 보다.


한참을 올라가니 아들바위가 나왔다. 바위 위쪽 작은 틈새에 왼손으로 돌을 던져 쏙 집어넣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단다. 장난 삼아 길에 구르던 조그마한 돌을 하나 집어 휙 던져봤다. 역시나 돌은 입구를 맞고 튕겨 나와 땅바닥에 떨어져 떼구루루 굴러 도망갔다. 허허허... 웃음이 났다.


왼편은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이 세동으로 가는 길이다. 혹시 뱀이 숨어 있을까 하여 오다 주운 퉁퉁하고 묵직한 나무막대기로 땅을 쿵쿵 치며 풀이 자란 좁은 길을 지나갔다. 그러자 마을로 이어진 시멘트 길이 나왔다. 그 길에 발을 막 내딛는 순간 저만치 모퉁이에서 트랙터가 나타났다. 촌로가 모는 트랙터가 "부아앙" 시끄러운 기계음을 내며 기세등등하게 달려왔다. 놀라 얼른 옆으로 비켜서 길을 내줬다. 몸이 시킨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 농부는 뭔 급한 일이 있는지 그렇게 냅다 산비탈을 향해 달려갔다.


세동은 아주 작고 인적이 드문 마을이었다. 마을 중심부에 보건소가 있고 그 옆에 마을회관이 보였다. 작지만 참 깨끗이 지었구나 생각하며 여기저기를 살피는데 어디선가 “쿵쾅쿵쾅”하는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보니 보건소다. 창문 너머로 할머니 몇 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춤을 추는 게 보였다. 신나는 음악에 비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할머니들의 춤사위는 사그라드는 불꽃같았다. 길을 따라 더 내려가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그루 서있고 그 옆에 평상이 하나 놓여있다. 예전에 마을 어귀인 듯했다. 한 때 동네 어른들이 장기를 두다 목청을 높이고 막걸리 통을 비우며 떠들썩했을 평상인데 어째 그날은 텅 비어 있었다. 수령이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와 산 아래 마을이 앉은 지세로 보아 세동은 아주 오래된 마을임이 분명했다.


시내로 나가는 도로는 좁지만 옛 길 위에 아스팔드 포장이 돼 있고 마을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마을 아랫녘에 정거장을 표시하는 녹슨 철제 표지판이 기우뚱 서있고 길바닥엔 차에 치어 죽은 뱀의 껍질이 양철판처럼 납작해진 채 햇볕에 더욱 말라가고 있었다.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한 촌로가 길 옆 밭에 엎드린 채 늙은 아내와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을 평상이 비어있는 건 젊은이가 없는 마을 늙은이들의 바쁜 가을걷이 탓이었다.


아스팔트 길을 오래 걸어선가 오른쪽 고관절과 허리가 아파왔다. 쉴 곳을 찾으며 내려가다 보니 간이 정류소인 듯 의자가 두 개 놓인 조그마한 건물이 나타났다. 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쉬며 스마트폰으로 현재 위치를 검색하니 남선리로 가려면 중세동까지 오던 길로 되돌아가 큰길 지하도로를 건너야 했다.


오던 길로 되돌아 섰다. 작은 예배당이 보였고 골목길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자 지하도가 나타났다. 남선초교까지 1.2km. 표지판이 알려줬다. 살짝 내리막 시멘트 길이다. 마을사람들이 품앗이로 만든 길인 듯 울퉁불퉁했다.


초등학교 정문으로 향하는데 노란색 학원차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자세히 보니 태권도장에서 운영하는 차다. 학생이 얼마나 타나 궁금해 지켜보니 한 명이 타는 게 아닌가. 시골학교에 학생이 적긴 적은 모양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학생 한 명을 태운 노란 버스가 송정동을 지나 엄사리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 사람이 참 귀하구나"


초등학교 뒤로 야트막한 산길이 이어졌다. 어린 학생들의 배움의 길이다.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십리길을 걷다 뛰다 하며 초등학교를 다니던 내 어린 시절 배움의 길도 이런 길이었다. "달그락달그락" 필통과 빈도시락에서 나던 추억의 소리가 푸른 가을하늘로 날아올랐다.


송정동 집집마다에는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고 가을배추와 무가 아주 튼실히 크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는 짚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추수를 기다리는 벼는 알곡을 꽉 채운 채 풍년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해 가을 세동마을은 그랬다. 세동은 특별하지 않았다. 내가 특별한 뭘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보고 싶어 갔을 뿐이다.


굳이 이유를 따진다면 그 해 가을이 지나면 나는 계룡대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세동을 보러 오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동이 불현듯 생각났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 해 가을이 마지막인양 붉게 타는 단풍잎과 흔들리는 억새풀의 유혹이 너무 강렬했다.


그 덕분에 나는 세동의 가을을 봤다. 가을걷이에 바쁜 촌로, 음악에 몸을 맡긴 황혼의 할머니들, 학생 한 명을 태우러 온 노란 버스와 태권도를 배우러 가던 꼬마학생, 푸르고 싱싱한 가을배추와 무, 꽉 채운 알곡을 노래하며 내일을 기다리는 벼, 그리고 가을로 물들기 시작한 담쟁이를 품은 돌담과 그 곁에 서있는 빨간 감나무들을...


그런 세동은 이제 나의 시간을 머금은 추억의 장면으로 가슴에 남았다. 얼마 전 이곳에 가보니 2차선의 시멘트 도로가 났다. 그새 오솔길은 온데간데없이 되고만 것이다.


그래도 어김없이 나의 가을은 또 오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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