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책
10대 말 방황하던 내게 소설 <데미안>은 충격이었다. 그 후도 다섯, 여섯 번은 읽은 듯하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했다. 열 살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성장하면서 겪는 치열한 영혼의 기록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를 중퇴하고 시계공이 되었다가 작가가 되어 인도를 여행하고 1차 세계대전의 광기를 경험한 그의 자전적 이야기는 중세 유럽을 지배한 정신을 넘어 ‘니체’와 ‘조로아스터교’와 ‘인도정신’, ‘찰스 다윈’, ‘구스타프 융’에 닿아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
선과 악, 두 세계에 대한 헤세의 명제는 선으로 일컬어지는 낮의 세계가 밤으로까지 확장되는 출발점이 됐다. 반대로 별은 어둠 속에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1919년 당시 표지 디자인으로 출판된 소장용 <데미안>을 발견하고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며 심장에 박힌다. 하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주목된 인물은 ‘데미안’도, ‘프란츠 크로머’도, ‘애바 부인’도 아니다. ‘아브락삭스’의 실체를 싱클레어에 들려준 바로 ‘피스토리우스’다.
젊은 시절 그의 꿈은 접었지만 그 꿈이 여전히 머무는 곳에 있는 자, 도덕과 무관하게 ‘바흐 Bach’와 ‘레거 Reger’의 곡을 좋아하며 혼자 빈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자, 내면의 세계 속에 사는 자, 그리스 그노시스파 Gnosticism를 얘기하는 자였다.
책장을 덮으면서 결국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이자 ‘데미안’이자 ‘피스토리우스’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 엄밀히 궁극의 헤세는 ‘피스토리우스’였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에는 ‘알’, ‘세계’, ‘깨뜨리다.’, ‘아브락삭스’ 등의 단어에 매몰되었었다면 나이가 들고 생각의 역사를 파고드니 비로소 헤세의 번민과 사상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신의 피조물로서의 도구적 인간관과 갈등할 때 내면의 세계를 따라간 주체적 인간의 독백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읽으면서 지나쳤던 한 문장이 남는다.
“각성된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단 한 가지,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면에서 견고해져서 그 길이 어디에 닿아 있건 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나가는 일, 그 이외의 다른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미안>은 읽을 때마다 내게 영감을 준다. 그래서 내 생애 책이다. //끝//
<데미안> 1919년 판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