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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

바다로 가는 시작점

by 생각전사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강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1972년 흑백 TV에 <개여울> 노래가 흘러나왔다. 17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성량이 남다른 정미조가 노래를 불렀다. 기억 속에 남았다.


그러고는 세월이 아주 많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개여울> 노래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가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가만히 보니 김소월의 시다.


강원도 치악산 옆에 나란히 솟은 산이 있다. 산세가 아름다워 이름마저 매화산이다. 어릴 적 나는 매화산 자락 작은 집에 살았다. 바로 옆에 여심동 계곡이 있다. 산줄기를 타고 내린 물이 바다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곳. 참으로 맑고 깨끗했다. 버들치와 미꾸라지, 송사리 떼, 메기와 가재가 그 속에서 놀았다. 산골사람들은 그 물로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여심동 계곡물은 매화산 아랫녘 풍취산의 삼배골에서 흘러내린 물과 매화분교 앞에서 만나 실개천이 되었다. 거기 개여울 징검다리 사이를 통과해 아랫말 친구 일근이네 집 앞을 지나 주천강 상류가 되었다. 물은 때론 고요히, 때론 요동치며, 때론 서로 부딪치며 남한강과 한강, 서해바다로 흘러갔다.


여심동 “졸졸졸” 물소리는 산새소리와 어우러져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여름 장마철이 되면 돌변했다. 폭우가 쏟아질 때면 엄청난 수량의 흙탕물로 변해 세찬 물살로 돌덩이를 굴리곤 했다. 지금도 눈 감으면 “우르르 쾅쾅” 밤새 울부짖던 여심동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분교 앞 개여울 징검다리를 건넌 사람들은 타지로 갔다가 대부분 돌아왔다. 하지만 여심동 물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 11살 때 징검다리를 건너 병원으로 간 엄마는 혼은 물처럼 떠난 채 죽음의 얼굴로 돌아오셨다. 여심동 버들치와 송사리 떼가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심배골 꼭대기 풍취산 아버지 곁에 누우셨다. 그리고 영영 내 가슴에 묻히셨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그럼요, 평생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엄마, 아니 어머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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