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2학년 봄날, 수업 중에 학생과로부터 호출이 왔다. 교장실로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교장실에는 교장 선생님, 학생과장, 담임 선생님 그리고 학부형 두 분이 계셨다.
학부형은 같은 반 친구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교장 선생님께 날 퇴학시키라고 항의하고 있었다. 친구의 부모는 그 친구가 나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했고 폭행한 나를 퇴학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내게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고, 담임 선생님은 구석으로 나를 불러 미안한 듯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나는 글씨를 잘 썼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에도 그랬다. 우리 반 교실 환경 미화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내가 다했다. 중고교시절에는 환경 미화부장만 했다. 나는 고2 때에도 어김없이 담임 선생님을 도와 월말 시험 후 우리 반 성적을 내고, 커다란 성적표에 60여 명의 성적을 처리하는 모범생이었다. 매월 월말 고사를 치르고 나면 담임 선생님의 지시로 수업시간에 숙직실로 가서 성적을 계산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5월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한 친구가 내게 자신의 성적을 보여 달라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담임 선생님께서 절대 알려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더니 내게 욕을 하며 날 괴롭혔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었는데, 참으면 될 것을 참지 못하고 그 친구를 몇 대 때리게 되었다. 그 친구는 코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튿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걱정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가방을 싸서 교실을 나와 한참을 방황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한참 일할 시간인데, 친구와 싸워 그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매형이 일하고 있는 도청에 갔다. 매형은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로 가서 교장선생님께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서 나를 대신해 잘못을 빌었다. 매형의 한 달 봉급이 치료비로 나가야 했다.
담임 선생님은 성적처리를 내게 시켰다는 사실을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께 말하지 말라며 나를 회유했다. 유기 정학을 받게 될 것이고, 대신 생활기록부에는 기록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학생과에서 주관하는 징계위원회에서 2주간의 유기 정학을 당하게 되었다.
나는 2주간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조그만 도서실에서 정학당한 가출했던 친구, 담배 피우다 걸린 친구, 다른 불량한 친구들과 함께 매일 반성문 10장씩을 쓰면서 지내야 했다.
며칠 후 반장이 내게 와서 담임 선생님이 반 학생들에게 나를 위해 오백 원씩 돈을 걷으라고 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게 성적 처리를 시키다가 발생한 일을 감추고, 생활기록부에 전과 기록을 하지 않는 조건을 내걸고,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다는 사실이 나를 실망스럽게 했다. 나는 선생님께 강력하게 항의했다. 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가? 매형이 치료비를 모두 해결하지 않았는가? 난 학생들이 걷어준 돈을 받을 수 없다.
언젠가 고등학교 동창회로부터 모임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동창회장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했다. 그 친구가 동창회장에 새로 선임되었다는 것이었다. 병원 원장이라는 것이었다. 하긴 공부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내게 성적을 보여 달라고 조르지 않았을까? 공부에 관심 없는 친구들은 성적을 보여 달라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슬쩍 알려 줄 것을....
난 앞으로 동창회에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그 친구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왔는데 그 친구를 무슨 낯으로 볼 수 있을까? 그 친구에게 지난날 가슴 아팠던 일을 기억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나의 유기 정학에 대한 불행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난날 정학을 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 친구에게 지난날 일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잘못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