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감상하신 분 or 스포일러 상관없는 분만 읽어 주세요.
* 영화 『8번 출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포영화는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무서운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에 궁금해도 보지를 않는데 이번엔 친구의 성화로 거의 강제 관람했다.
결론은 ··· 공포영화 포스터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인 쫄보 동지 여러분, 이 영화는 안심하고 보셔도 됩니다. 근데 앞으로 약 일주일 정도는 지하철 못 탈 것 같긴 해요.
동명의 게임 <8번 출구>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들었다. 친구 말로는 게임은 플레이어가 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영화에서 캐릭터들에게 부여한 서사는 게임과는 연관 없다고 한다. (해당 오리지널 설정은 감독이 쓴 소설 「8번 출구」에 영화보다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인 헤매는 남자, 걷는 남자, 소년, 주인공의 여자친구인 어떤 여자, 여고생. 크게 5명이다. 그 외 꽤 중요한 캐릭터로는 아기를 안은 엄마와 우는 아기, 그들에게 호통치는 남자가 있다.
일단 이 영화는 공포나 스릴러 타이틀을 달기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만들었다면 이도저도 아닌 신파 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나마 기괴하고, 음침한 작품을 만드는 데 소질 있는 일본이 제작해서 '오? 그래도 좀 만들었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는 아기와 아기를 달래는 엄마,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남자를 외면한 주인공이 이별을 결심한 연인에게서 임신 소식을 전해 듣는다.
주인공은 연인과 통화하며 집합 장소로 가기 위해 출구를 찾지만 그대로 역에 갇히고 만다. 8번 출구로만 탈출할 수 있으며, 8번 출구로 가기 위해서는 0번 출구부터 차근차근 이상현상을 찾아야만 한다.
이상현상을 발견하면 되돌아가고, 이상현상이 없으면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식. 영화에 나오는 이상현상으로 예를 들어 보자면, 벽에 붙여져 있는 포스터 속 사람과 캐릭터의 눈알이 주인공이 움직일 때마다 그를 따라 이동하는 이상현상 발생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그럼 0번에서 1번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안내사항을 따르지 않으면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한다.
재밌는 건 초반부, 주인공이 SNS를 보고 있을 때, 지하철 출구로 가는 통로 사진이 한 장 나온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 통로에 자신이 갇히게 될 것도 모르고서 아무렇지 않게 스크롤을 내린다.
내 기준 작품의 좋았던 부분과 의문스러운 지점이 명확하다.
좋았던 점으로는 첫째, 연출을 들 수 있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는 사실 뻔하게 만들지 않는 게 더 어렵다. 주인공이 보는 게 관객이 보는 것이고, 주인공이 느끼는 걸 관객도 함께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8번 출구』는 주인공이 볼 수 없는 것까지 관객에게 보여 준다. 천장의 형광등이 한 개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붙은 징그러운 광경을, 주인공은 보지 못하고, 관객만 볼 수 있는 식으로.
뭐, 전형적인 공포영화 연출이라고 말한다면 반박할 순 없다. 그러나 원작이 플레이어인 '나'가 곧 '주인공'인 게임인 것을 생각해 봤을 때, 게임 캐릭터의 시점에서는 깨달을 수 없는 걸 제삼자의 눈으로 보았을 땐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저들의 흥미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좋았던 점 두 번째로는 사운드를 빼놓을 수 없다.
이건 정말 극장용 영화라고 생각했다. 특히 시작하면서부터 울려퍼지는 볼레로가 정말 소름 돋을 만큼 맘에 들었다. 이것 말고도 각 이상현상에 따른 기이한 소리가 영화의 몰입감을 끌어올려 주었다.
다만, 의문스러운 점은 소년의 역할이다.
친구의 말로는 게임에서 소년의 역할이 영화에서만큼 크지 않다고 한다.
영화에서 소년은 주인공 아들의 미래 모습이다. 주인공이 갇힌 시점, 그의 여자친구는 병원에서 낙태를 고민하고 있다.
소년은 이상현상으로 등장한 주인공의 여자친구를 "엄마"라고 부른다. 이 다음, 소년의 역할에 대한 혼동이 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소년과 주인공의 행동과 가정환경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찾아 주었으면 해 일부러 길을 잃은 것과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 없다는 것이 그 공통점이다. 그래서 이땐 잠깐 '소년이 주인공의 어린시절인 건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 얼굴을 몰라볼 리는 없고, 정황상 주인공이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아이는 아빠 없이 자라게 될 것이며 후반부에 소년이 주인공의 아들이란 명확한 씬이 등장한다.
극중 소년의 역할로는 주인공의 부성애 자극과 주인공이 8번 출구를 찾을 수 있게 돕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소년은 주인공과 떨어지게 된 이후, 이상현상이 있는지 없는지 둘러보지도 않은 채 뚜벅뚜벅 직진해 홀연히 사라진다. 꼭 미로 속에 갇힌 주인공을 구하러 왔던 존재처럼 말이다. (가장 황당했던 장면. 이 부분이 영 찝찝해서 엄마가 자신을 찾아 주길 바란다는 말도 낙태를 하지 말았 줬음 한다는 의미 같아짐. 여자친구는 주인공에게 어떡할 거냐고 물었고, 그건 곧 여자친구의 결정이 주인공의 의견에 따라 좌우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처음엔 소년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도 궁금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우는 아기처럼.
아기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는 것이나 행동으로 의견을 표출한다. 소년도 말 없이 문을 쳐다보거나 팔을 잡아당기며 가지 말자는 의사 표현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여자친구를 마주했을 때, 마침내 말문이 트인다. 그때부터 아기의 역할에서 좀 더 자란 아이의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실제로 그 시점부터 어린 아이의 특징과 비슷하게 어른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했다. (이상현상이 있는지 체크하며 "좋아!"라고 외친 것)
이 영화를 두고, '우리의 인생에는 수많은 이변이 존재하지만 그 이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해석하는 게 보편적이다.
즉, 주인공에게는 그것이 예상 못한 아이의 존재인 것이다. 처음에 주인공은 소년을 이상현상이라고 치부하지만 점점 그의 존재를 하나의 인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 앞에 주어진 '이변'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소년을 이용해 주인공의 부성애를 자극하는 듯한 연출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런 감동을 유발하는 설정은 대개 아이는 내 목숨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뉘앙스만 풍길뿐, 하나의 생명을 진중하게 다루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 내용에 따르면 걷는 남자가 역에 갇힌 날이 아내와 아이에게 난폭하게 굴다 이혼 당한 후, 오랜만에 아이를 만나는 날이었다고 한다. 이 설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감독은 걷는 남자와 주인공을 대척점에 두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의지가 있었다면, 그런 중요한 설정은 영화에서도 보여 줬어야 한다. 그랬다면, 소년의 시선을 깨닫지 못해 이상현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엔 소년을 두고 갔던 걷는 남자와 소년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며 끝까지 소년을 지키려고 했던 주인공이 더욱 차별화 됐을지도 모른다.
소년의 역할을 제외하고 납득할 수 없었던 건 주인공이 앓는 '천식'이다. 이 병이 어느 기점을 중심으로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설정인 것마냥 감쪽같이 사라졌다.
주인공이 다시 0번으로 되돌아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졌을 때, 난 게임처럼 '리셋' 문구가 뜨며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바닥에 떨어진 천식 흡입기는 챙기지도 않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물론 '천식'이란 설정 자체가 주인공에게 있어서 심적 변화의 기준점으로만 작용한다는 건 알겠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역시 완전히 납득하기엔 굉장히 갑작스러운 전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니, 구체적으로는 너무 끔찍했다. 마치 알람 소리를 듣고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나는 내 모습 같아서.
바쁘다 바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질병 '뒤처지면 안 돼 병'
아무리 지치고, 아프고, 피곤해도 무조건 일어나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잔뜩 무리한 뇌로 "오늘도 알차게 살았다"하며 뿌듯해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살기 때문에 이상한 걸 느끼지 못하는데 사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적어도 주인공이 누워 있다 몸을 일으켜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짧은 장면이라도 보여 줬다면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 『8번 출구』에는 룰이 존재한다. '이상현상을 발견할 시, 되돌아갈 것' 다시 말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을 때에는 정면으로 부딪힐 필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너무 무겁게 살아가려고 한다.
살면서 안전한 길만 갈 수 없고, 그 길이 날 행복하게 만들지 불행하게 만들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지만 걸어가는 과정에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닥친다면 굳이 마저 걸어갈 필요 없다.
다르게 말해, 내가 이겨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거나 감당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다면 계속 걸어나가면 되는 거다. 주인공은 8번 출구를 찾는 것이 자신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걷는 남자처럼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덤덤히 세상의 룰대로 행동했다. (이런 면모가 확실히 다르다.)
주인공은 8번 출구를 찾아 탈출한 후, 병원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가겠다고 말한다. 그 이후 다시 처음과 반복되는 장면. 우는 아기와 아기를 달래는 엄마와 그들에게 호통치는 남자. 이번에 주인공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선택한다.
자신이 그 상황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했다. 마냥 회피만 하던 과거와는 달라졌다.
우리가 살아가며 눈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이변. 우린 그것을 눈치챌 수도 있고,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행동에 따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인생의 챕터를 넘기며 눈앞에 닥치는 문제를, 유심히 살펴 보자. 길이 없다고, 이젠 다 틀렸다고 절망해도 된다. 자신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다는 것을 잊지만 않으면 다 괜찮다.
인생이 벗어날 수 없이, 같은 곳을 빙빙 도는 지옥 같더라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8번 출구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