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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항상 공복에 떨렸다. 여느 도시들과 달리 유별난 관광지도 없었고 사람들이 찾아올 이유도 없었다. 노인들이 자리를 지켰고 젊은 사람들은 자리를 떠났다. 남을 이유도 없고 들어올 이유도 없었다. 잿빛 건물들만이 간신히 호흡했다.
갯버들이 보였다. 아침 햇살에 풀의 잔털까지 반짝이는 게 보인다. 그나마 출근길의 낙이다. 작은 하천을 따라 나있는 길 옆 회사로 향하는 길. 관리가 되지 않는 하천 옆엔 잡초와 갯버들이 무성했다. 무성한 풀들 사이, 하천에 윤슬이 보였다. 반짝이는 햇살 조각이 흐르는 강물 위러 쪼개졌다. 하지만 이곳을 떠난 사람들처럼 하천 근처엔 어떤 새도, 물고기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사실, 죄송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습관적인 것일 뿐. 이제 일을 시작한 지 2년. 작은 광고 회사에 들어가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기 시작한 게 재작년이다. 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광고주에게도, 상사에게도 깨지는 게 일상이다. 오늘은 광고 시안 글자를 너무 작게 뽑았다고 꾸중을 들었다.
팀장의 자리는 회사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있었다. 넓고 빛바랜 흰 책상 뒤엔 좁고 위로 긴 창이 나있다. 폭이 좁은 탓에 햇빛이 드는 시간은 극히 잠시지만 우리 층에서 유일하게 볕이 드는 자리다. 그의 책상 위에는 키가 작고 화려하지 않지만 볼품은 그럭저럭 있는 화분이 놓여 있다. 그것 빼곤 그의 책상은 성격만큼이나 깔끔하다. 수십 개의 바랜 노란색의 서류철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 옆엔 연식이 오래돼 시끄러운 데스크탑 하나가 있다.
“이제 됐다. 돌아가”.
책상을 눈여겨보다 보니 그의 할 말이 이제 끝났다. 팀장은 그 말을 하고는 짙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잘 정돈된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그대로 돌아 자리로 돌아왔다. 내 자리는 건물의 누런 벽 바로 앞. 좁지만 아늑하다. 양 옆에 책상이 하나씩 더 있지만 언제 퇴사했는지 모를 선배 두 명의 자리로 공석인지 오래다. 서랍을 연다.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든다. 나는 팀장이 자리에서 고개 숙인 틈을 타 회사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연식이 오래돼 외벽도 모두 변색된 이 건물엔 우리 회사 밖에 없다. 회사엔 우리 부서를 포함해 몇 없는 부서들이 있고 일하는 직원 수는 수십 명이다. 그 중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다. 적어도 2년 동안은 그랬다. 그럼에도 회사 옥상엔 오래된 재떨이가 하나 있었다. 담배갑을 열어 한 대를 입에 문다. 날이 추워졌다. 외투라도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차가운 바람이 무서운 기세로 옆구리를 치고 지나갔다. 기온이 낮아지면 담배 연기가 짙어진다. 난 그 점에서 추운 날씨를 좋아한다.
한 모금, 두 모금 내뱉으며 건물 아래를 내려다봤다. 회사는 오래된 시가지에 있었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대개 나보다 나이가 더 많고 이 곳에 산 지 오래된 노인들이었다. 책방이나 구멍가게 따위를 하는. 월요일 오후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덩치가 작은 마을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찬란한 초록색이었겠지만 누가 오랫동안 쓰다듬기라도 한 듯 색은 바래있다.
이 도시는 바램이 특징이다. 뭐든지 색이 바래지 않은 게 없고 심지어는 사람들도 눈에 총기를 잃고 바래졌으니. 이곳에 사는 노인들은 마치 개성을 박탈당하고 자기 자리에서 역할만 하는 영화 단역들과 비슷하게 자신의 자리만 지킬 뿐이었다. 서로 교류하지도 않았다.
십 수 년 전 대학이 있던 이 도시는 학교가 문을 닫자마자 급속도로 쇠퇴하고 노화되기 시작했다. 바래지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일 것이다. 그 때를 기억한다. 나는 그 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이었으므로. 화려하진 않아도 활기차고 고즈넉한 멋이 있는 마을이었다. 폐허가 된 듯 여러 식기구들만이 버려져있는 회사 옆 가게들은 지금처럼 회색 빛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넘쳐 흘렀다. 따스하고 아늑한 주광색 불빛들이 거리를 밝혔다. 지금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지켜오던 노인들 몇이 남아있을 뿐이다. 거리는 잿빛이 됐다.
도시는 분지 지형에 있었다. 인근 도시까지는 버스를 타고 빨라도 1시간이 걸렸다. 둥그런 분지 지형에 네모난 건물들이 명쾌한 도시 계획 없이 가득차 있다. 지금 그 건물들은 도시를 더 황폐화되어 보이게 만들었다. 아무 인적도 없는 빈 회색 상자들로 변했다. 내가 다니는 광고 회사 인근엔 몇 개의 서점이 있었고 몇 개의 구멍가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진 않았지만 애초에 벌이를 목표로 하는 가게들 같아 보이진 않았다. 십중 팔구 가게 안엔 주인인 노인이 졸고 있었다. 도시의 가운데엔 공원이 있었고 동서남북을 둘러싸고 산이 있었다. 남쪽엔 그나마 볕이 드는 초원이 있었다. 이 도시는 세상과 고립된 듯했다.
나는 담배를 재떨이에 문지르고 그대로 내려왔다. 오후에는 할 일이 없었다. 동료와 몇 번 형식적인 문자를 주고 받은 뒤, 서점으로 향했다.
퇴근하면 나는 서점을 향한다. 언젠가부터 정해진 루틴이었다. 사고 싶은 책이 있진 않지만 집 앞의 서점은 꽤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래된 종이의 향기가 그득했다. 여든 살이 훌쩍 넘은 노인이 서점 문 뒤에 앉아 졸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기 전 바삐 움직였는지. 항상 모든 책들은 있어야 할 곳에 정확하게 있었다. 책의 높낮이 순서도, 책의 제목의 가나다 순도. 오가는 이가 없는 건지 노인의 성실함이 뛰어난 건지 항상 단 한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노인이 없었다. 서점은 저녁 9시까지 연다. 불은 켜져 있었다. 그러나 항상 그가 앉아있는 자리에 빈 의자만이 놓여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높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도시에서 듣기 쉽지 않은 목소리였다. 40대는 돼보이는 여성이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서고 옆에서 나왔다.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 서점 문이 열린 소리를 듣고 내 쪽으로 돌아봤다.
“오셨어요”.
그가 웃으며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어떻게 안녕하신지가 아니라 왔는지 물은 건지. 의문스러웠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그가 말했다.
“오신다고 들었어요. 아, 놀라셨겠군요. 외할아버지가 여기 서점 주인이에요. 몸이 안 좋아지셔서 당분간 못 나온다고. 저에게 맡겼어요. 매일 이 시간 즈음 오는 삼십 대 남자 분이 있다더군요”.
“그렇군요. 그게 저인지는 어떻게 아신 거죠”.
“아시겠지만 여기 서점엔 사람이 많이 없어요. 도시도 그렇지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돌아서서 원래 하던 통화를 계속 해나갔다. 들리는 것으로 추측해보면, 남편과의 통화였다. ‘당신은’이라는 말이 들렸다. 그는 점잖고 차분하지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어조로 통화를 이어갔다. 수차례 논쟁이 오갔다. 나는 들리지 않는 듯,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항상 정갈하고 정돈된 서점의 구조. 마치 조금이라도 달라진 점은 없는지 점검하는 듯 난 서점의 책들을 쓰다듬고 관찰했다. 변하지 않는 도시의 변하지 않는 서점의 책들을 구경하는 게 나의 취미였다.
“무엇을 하시는 건가요”.
다시금 높고 작은 그의 소리가 들렸다. 서점은 적막했기에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나는 그를 향해 돌아봤지만 마땅히 할 말을 찾진 못했다.
“책을 구경하시는 거죠”.
“네, 그런 편이죠. 여긴 항상 변하지 않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변하지 않으면 매일 들를 이유가 없지 않죠. 그렇지 않나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게 좋아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서점은 매일 같은 위치에 같은 책이 있어요“.
“그 점이 마음에 든다는 건가요?”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말했다.
“예. 같은 곳에 같은 제목의 책이 있다는 거. 매일 와도 그렇다는 게 나름의 위안이 되거든요”.
흥미로웠던 모양인지 통화를 급히 끊고 내게 몸을 완전히 돌렸다.
“신기하네요. 외할아버지는 서점을 제게 맡기면서 한 가지만 부탁했어요. 같은 책이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당신을 염두에 둔 걸까요. 마치 점검하듯 책을 만지니까요“.
“아, 죄송합니다. 점검하려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 서점이 무언가 안정감을 줘서요. 이 도시는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는 무언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하려는 정도의 수준인지 모르지만.
“이 도시는 저도 잘 알아요. 어렸을 적부터 이곳에 살았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돌아섰다. 잠시 멈추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듯 했다. 이윽고 바퀴가 달린 선반의 수레를 밀며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몇 초간 그가 왜 이 도시에 살았다가 떠났는지, 혹은 왜 떠나지 않고 남았는지 사념했다. 그리고는 원래대로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서점은 규모가 작았지만 책의 수는 꽤 많았다. 일본 문학부터 러시아의 문학까지. 유독 문학 책이 많았다. 그 점이 좋았다. 도시의 마지막 낭만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학은 허구의 글이니까.
“다 보셨나요?”
그가 책을 정리하던 중 말했다.
“예. 오늘은 이정도면 될 것 같네요. 이제 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당분간은 제가 서점을 맡을 테니 또 인사해요”.
고개를 가볍게 끄떡이고 난 돌아섰다.
집으로 오는 길, 다시 갯버들이 흔들렸다. 아무도 없지만 풀벌레는 있는지.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그 옛날 밤풍경처럼 하천은 흘러간 시간을 모르고 흘렀다.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난 집으로 돌아왔다. 조용하고 어두운 집으로. 어둠이 감싸는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