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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 바랜 도시의 바람들 2부

by 노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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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도 서점에 들렀다. 매일 같이 하는 일이라 다음날에도 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서점엔 여전히 높고 작은 목소리의 그가 있었다. 나는 똑같이 책을 짚었고 몇 권의 책을 꺼내어 읽어보았다.


“매일 오시는 건가요?”

그가 말했다.

“아마도요. 이곳을 들르는 건 일종의 루틴이에요. 하루도 빼먹긴 어렵죠”.


“재밌는 분인 것 같으니 종종 떠들어요. 괜찮으시다면요”.


“전 상관 없어요. 그럼 내일 봬요”.


다음날부터 나는 묘하게 그와의 대화가 기다려졌다. 이틀 동안 제대로 대화해본 적도 없지만,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안정감을 찾던 내게 그는 회복해야할 불안정이었다. 새로운 자극이었고 난 그 자극을 안정시켜야 했다. 그와의 대화도 내 일상이 돼야 했다.


오후, 난 옥상에 올라갔다. 집은 회사에서 15분 거리이고 서점은 집 바로 앞에 있다. 주변 건물의 층수가 낮다보니 6층 짜리 회사 건물에서도 모든 게 보였다. 서점은 불이 켜져있었다. 내 담배 연기 사이로 간혹 서점에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왼쪽 어깨에 전화기를 끼운 채, 분주한 듯 책들을 만졌다. 표정은 일그러져있었다. 통화하는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아보였다.


담뱃불을 끄고 난 자리로 돌아갔다. 이윽고, 서점에 들렀다.


“계시나요”.

난 그간 서점에 무심히 들렀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먼저 말을 걸며 발을 디뎠다.


“예. 무슨 일이시죠. 아, 오셨군요”.


“오늘도요. 책은 사지 않을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새삼 놀랐다. 노인이 운영할 땐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낮에 담배를 태우며 일하는 걸 봐서 그런지, 금전적 보상을 해주지 않는 노동을 봐서 그런지. 평소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하시네요. 그럴 필요 없어요. 편하게 둘러보세요”.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곤 다시 돌아섰다.


나는 똑같이 책을 잡고 놓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여전했다. 한국 문학의 신간은 가장 앞에, 오래된 고전 문학은 가장 뒤에. 그 뒤부터는 각종 해외 문학들이 이어졌다. 책들이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내겐 왠지 모를 큰 위안이었다.


“이곳엔 오래 사신 건가요?”


적막을 깨고 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쭈욱 이곳에 있었으니까요”.


“전 유년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선 서울로 떠났어요. 도시가 늙어간 건 그 이후지만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해서 어디로든 가고 싶었거든요”.


그는 이제야 대화 상대를 만났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왜 서울로 떠난 건가요? 당시엔 이 도시에도 대학이 있었을 텐데요”.


“부모님 때문에요. 항상 제가 더 큰 도시에서 많은 경험을 하길 원하셨거든요. 이곳을 떠나길 바랐어요“.


“그럼 이 일을 그만두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아마도 그렇죠. 원래 서울에서 맡은 일이 있으니까요“.


”원래 서울에서도 서점에서 일하신 건가요“.


”아, 그렇지 않아요. 서울에선 서점과 상관 없는 아주 큰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사무적인 업무죠. 회사의 재무를 담당하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동네의 작은 광고 회사에 다녀요. 벌이가 많진 않지만 이 동네에 살기엔 나쁘진 않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더 이상 얘깃거리를 찾지 못하는 듯 망설였다. 몇 초간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지루하진 않나요. 이곳엔 아무것도 없잖아요. 외할아버지의 병환만 아니라면 저는 이 동네에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지루하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있던가. 나아가 지루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즐겁고 신나는 일을 한 적이 있던가.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언제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안정적인 지금이 좋다. 좋다는 말은 행복이나 만족이란 말과 거리가 멀었다. 행복, 만족, 충만. 그 단어들을 나에게 적용시켜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


“글쎄요. 전 지금의 생활이 좋아요. 좋다기보단…”


말끝을 흐리자 그는 자신이 잘못된 질문이라도 한 것처럼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괜한 말을 했군요. 마저 둘러보세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하시네요. 괜찮아요”.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노인이 항상 앉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노인처럼 졸진 않았지만,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임무라도 있는 듯했다. 그는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걸어가며 ‘좋은 생활’에 대해 사념하기 시작했다. 만족과 충족을 느껴본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생각해보면 중학교 2학년에 그 단어들은 멈춰있었다. 난 중학생 시절을 추억했다. 엄밀히 말하면 기억을 꺼내 보았다. 추억은 좋은 기억을 의미하기에. 중학생의 나는 지금과 달랐다. 더 사교적이었고 활력이 있었다. 그때는 내게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유치원부터 함께 어울려 다닌 아이. 준혁이란 이름의 사내 아이였다. 그는 조용하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은 순둥하지만 우락부락한 외모의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까지 함께 입학한 우리는 같은 반이 되지 못해 아쉬워 했다. 그래도 등하굣길을 함께 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2학년이 돼서도 우리는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그 시점부터 였을 것이다. 한 학년 위의 선배들에게 준혁이가 불려다닌 것이. 그 선배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준혁이를 데리고 다니며 담배나 술 따위를 가르쳤다. 그는 거절하지 못하고 3학년 형 누나들과 어울려 다녔다. 학기 중반이 되자 그는 어느새 그들의 수거책이 됐다. 하루에 천 원씩. 모든 2학년 학생들은 그에게 돈을 냈다. 그는 나에게만은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우린 그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때 쯤부터 대화를 하지 않았다. 같은 아침 햇살과 낮의 햇볕 아래 등하교도 함께 하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그는 선배들과 술을 마시러 시내로 나갔다.


그때 난 한 반의 반장이었다. 며칠 정도는 준혁이의 행동을 그저 두고 보았다. 하지만 점점 그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기 어려워졌다. 우리 반에는 어머니가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하는 아이가 있었다. 한 달에 용돈을 천 원 받는 그가 돈을 준혁이에게 주지 못하자 준혁이는 그를 때렸다. 처음엔 준혁이 스스로도 때리고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배들로부터 자존심을 배웠나보다. 그 뒤부터 준혁이가 그 아이를 때리는 일은 계속됐다. 내가 반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어느 날, 점심 시간이 지나고 준혁이는 또 다시 그 아이에게 돈을 받으러 우리 반에 왔다. 돈이 없다고 하자 오른손을 들고 그를 때리려 했다. 나는 참다 못해 준혁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만해. 준혁아”.


그 때였다. 짝-소리와 함께 시선이 하늘로 요동쳤다. 머리가 크게 흔들리고 안경이 손 닿지 않는 곳으로 날아갔다. 다시 눈을 준혁이에게 고정했다. 왼쪽 뺨이 쓰렸다. 그는 내 왼뺨을 때리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과해”.


순간 멍해졌다. 그가 나를 때렸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고 내가 사과해야 하는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을 너가 망쳤잖아. 사과하라고. 내가 우스워?”


나는 사과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짝-


한 번 더. 시선이 하늘로 옮겨졌다. 왼쪽 뺨에 통증이 느껴졌다.


“성훈아, 사과해”.


내가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맞았을 그 아이였다. 그가 준혁이 옆에 서서 나에게 속삭였다. 사과하라고.


“미안”.


납득할 수 없는 첫 사과였다.


“씨발”.


한 마디 욕과 함께 그는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손에 우리 반 학생들로부터 받은 수십 장의 천 원 짜리를 들고. 난 아직도 멍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방금 나를 때린 게 준혁이가 맞는지, 난 내 입으로 미안하다고 말한 게 맞는지. 난 떡볶이 집 그 아이를 쳐다봤지만 그 아이는 시선을 외면한 채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반 학생들도 잠시 멍해졌다 금방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뒤로 준혁이는 나를 피했다. 어느새 다수가 된 그의 무리는 나를 대놓고 무시했다. 길을 가로막았다며 나에게 침을 뱉었다. 그들이 뱉은 침이 교복 위 명함에 묻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미안해 했다. 길을 막아서 미안하다고. 그들 무리가 있어 담배 연기가 그윽한 화장실의 변기 칸을 쓸 때 물 세례를 맞는 건 일상이었다. 화장실에 갇힌 적도 있었다. 화장실에 갇혀 수업을 못 들어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난 화를 내거나 소리를 내 꺼내달라고 하기는 커녕 미안해했다. 무엇이든 잘못한 것처럼. 그러다 다음 쉬는 시간이 돼 우연히 화장실에 들른 학우에 의해 구출됐다.


그리고 난 그 후로 수많은 사과를 해왔다. 사과하는 습관도 그때 생겼다. 그 뒤로 학창 시절은 내게 추억이 되지 못했다. 동네가 작기 때문에 한 번 찍힌 낙인은 고등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준혁이는 나와 고등학교도 함께 갔다. 나에게 침을 뱉었던 그의 무리도. 다행히 대학은 혼자 갔지만 나에겐 그 시절의 상흔이 남았나보다. 난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나만의 공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변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서른 네 살이 된 지금도 그 때가 생생히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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