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새로이 사랑을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로이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다. 얼마 전, 내가 정말 아끼는 지인과 통화했다. 그는 자신이 연애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감정 소모도 너무 심하고, 자신은 회피형이라 아마 모두가 싫어할 거라고. 자신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줄 안다는 역량에 놀랐지만, 더 놀랐던 건 그가 연애에 대해 내린 정의다. 그가 말했던 건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형태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친구가 말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상대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가 일치해야 바람직한 사랑이 성립한다고. 모르겠다, 그의 말의 출처가 어딘지. 에리히 프롬일 수도, 변방을 떠도는 한 학자의 이야기일 지도 모르지. 누군지 몰라도 명쾌한 정의를 내렸음에는 틀림없다. 외로우면 연애하면 안된다고, 그러면 그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게 된다고 하지 않나. 그를 양쪽 입장에서 계산한 게 바로 위의 말이다.
그러니 새롭게 누군가를 마음에 넣기란 어려운 일이다.내 남은 마음의 여분의 크기와 맞는지, 들어오면 내 면역 체계를 망가뜨리진 않을지 많은 것을 재고 따져야 한다.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두려운 일이 될 수 밖에는
없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일 수 밖에. 사랑해온 것들을 사랑하자,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