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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01. 2021

형 착하게 살아야 복받는 거야!

작년 가을에 유행했던 고무딱지가 다시 놀이터에 등장했다. 아들의 딱지를 처분하려다 혹시 하는 마음에 남겨두길 잘했다. 3년 전에도 딱지 유행이 끝난 것 같아 놀이터에서 모두 나눠줬다가 다시 유행하는 바람에 중고마켓에서 사야 했다. 요즘 아들은 이틀에 한 번은 고무딱지가 든 가방을 들고 놀이터에 나간다. 묵직한 딱지 가방에는 많은 미니 딱지와 몇 개 안 되는 왕딱지가 들어있다. 놀이터에서 미니 딱지는 인기가 없어서 아들은 왕딱지를 잃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다. 놀이터에서 딱지를 친구들에게 뿌린 후에 중고마켓에서 다시 사 주면서 더 이상 딱지를 사주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왕딱지를 모두 잃으면 다시 왕딱지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요즘 아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실력이 아주 좋아서 친구들의 왕딱지를 따면 되겠지만 사실 아들은 실력이 아주 형편없어서 자주 잃고 온다. 


며칠 전 놀이터에 간 아들은 아주 속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친한 친구와 딱지치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2살 아래 아는 동생이 아들의 왕딱지 3개를 가져가서 다른 아이와 딱지치기하다가 잃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아들에게 돌려주려고 해도 딱지를 잃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단다. 아들은 화가 나서 왜 남의 딱지를 마음대로 가져가냐고 따졌지만 그 아이는 아들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았단다. 그러더니 아들에게 딜을 해왔다고. 아들이 왕딱지 하나를 주면 딱지치기를 해서 자기가 이기면 자기가 두 개를 가져가고, 아들이 이기면 돌려주겠다고 했단다. 아들은 그게 뭐냐고 왜 내 딱지를 가지고 니 마음대로 하냐고 했지만 그 아이는 막무가내로 안 그러면 그냥 이거 내가 가질게 라고 억지를 썼단다. 아들은 할 수 없이 그 아이와 딱지치기를 했는데 아들이 이겼다. 두 번 세 번 계속 아들이 이겼는데도 그 아이는 자기가 이길 때까지 계속하더니 자기가 이기자 아들의 딱지를 가지고 가려고 했단다. 아들은 화가 나서 딱지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 아이는 자기가 이겼으니까 가져가겠다며 집으로 갔단다. 


아들은 속상한 마음을 저녁 내내 털어놓았다. 아들의 말을 듣는 나도 화가 났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또미야 다음에 또 그 아이가 그러면 하지 말라고 무섭게 소리 지르면서 말해. 진짜 화를 내면서 말해."

"소리 지르면서 말했어요. 너무 소리 질러서 지금 내 목이 아플 정도로. 그런데 걔는 신경도 안 쓰는 애예요." 


아들과 나의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말했다. 


"또미야 다음에는 네가 힘으로 밀던지 강제로 빼았든지 해서 니 딱지 못 가져가게 해. 너 힘으로 그 애 이길 수 있잖아. 너보다 2살 어린 동생이잖아."

"그런데 아빠 내가 힘으로 안 될 수도 있어요. 솔직히 내가 싸움은 안 되거든요."

"그래? 그럼 그 애랑 아예 상대도 하지 말고 무시해."

"나도 상대 안 하고 싶은데 걔가 자꾸 나한테 와서 시비를 건다니까요."


이런 답도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화가 났다. 그 아이한테도 화가 났지만 아들에게 정확한 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났다. 마음 같아서는 그 애를 찾아가 따지고 혼내주고 싶었다. 나는 아들에게 그런 속상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엄마 아빠한테 말하라고 했다.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엄마 아빠가 알아야 널 도와줄 수 있으니까 꼭 말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네 마음을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데 엄마 진짜 화가 나는 건요. 걔가 집에 가면서 한말 때문이에요. 걔가 형 착하게 살아야 복 받는 거야. 이러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아들의 말을 듣고 너무 얼척이 없어서 나는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났다. 동네형 딱지로 신나게 놀고 형의 딱지를 갈취한 꼬맹이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은 알았는지 아들에게 회심의 한마디를 던진 것이다. 형은 착해서 복 받을 거야 이러면서. 어떻게 초3이 이런 생각과 말을 할 수 있는지 나는 그저 놀랍기만 했다. 


"또미야 걔가 한 마지막 말은 무시해. 그건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야. 그건 착한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용당하기 딱 좋은 말이야. 걔는 자기 잘못된 행동 때문에 나중에 어른들한테 혼날까 봐 너한테 그런 말 한 거야. 앞으로도 절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마."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고작 10살을 상대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고작 10살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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