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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25. 2021

아빠의 키보드 소리에 아들이 말했다.

아들은 9시가 조금 지나면 방으로 들어간다.

잘 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아들은 뒹굴뒹굴하다가 잠드는 것을 좋아한다.

급하게 써야 할 서평이 있었던 남편이 노트북을 들고 아들을 따라 들어간다.

아들은 이불 위에서 눈을 감았다가 이불을 돌돌 감았다가 다시 풀었다가 한다.

이럴 때 아들은 새끼 고양이 같다.


"아빠 비 와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이불 밖으로 얼굴을 쏙 내밀고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비 안 오는데."

"타닥타닥 빗소리가 들렸는데."

"아~ 키보드 소리야. 아빠가 빨리 서평 써서 독서회 밴드에 올려야 해서."

"네~난 또 비가 오나 했어요."

무심하게 말하고 아들은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동화 같고 시 같다.

아들 곁에 오래 있고 싶어서 아들 옆에서 서평을 쓰는 남편이라니.

그 소리가 빗소리 같다고 말하는 아들이라니.


올여름 우리나라는 열대기후처럼 비가 온다.

청명하게 맑은 날 갑자기 비가 쏟아지다 뚝 그친다.

그리고 다시 눈부시게 맑은 날씨로 바뀐다.

그러던 것이 요 며칠은 계속 흐린 날씨에 비가 오다 안 오다를 반복한다.

비가 쏟아질 때는 무서울 정도다.

이렇게 매일 비가 와도 괜찮을까 싶은 날씨다.

그래도 거실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예쁘다.

비가 쏟아지면 유리창에도 비 구슬이 내린다.

비가 와서인지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앉아서 쉬었다 가기도 한다.

9층이지만 산 앞이라 그런지 우리 집은 모여라 곤충의 숲이다.


비가 그친 밤에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남편의 키보드 소리도 들린다.

아들은 빗소리를 닮은 키보드 소리에 잠이 든다.

나는 동화 같은 밤이 깊어가는 것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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