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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23. 2021

아빠 내 마음이 딸기 상자가 됐어요

아들이 쌓아두었던 선물 쿠폰으로 RC카를 샀다. 아들은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생일에 받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우리는 아들이 사고 싶은 것이 생기면 쓸 수 있는 선물 쿠폰을 발행한다. 총 7장의 선물 쿠폰이 있었다. 아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그중에 하나를 사용했다. 아빠도 아들과 함께 놀고 싶다며 RC카를 장만했다.


아들과 남편은 비장하게 놀이터로 나갔다. 두 시간 만에 돌아온 아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며칠 온도가 올라가긴 했지만 이 정도로 더운가 싶었다. RC카를 따라 달리다 보니 뜻밖의 운동효과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스티로폼 딸기 박스를 들고 있었다. 놀다가 물을 사러 들른 마트에서 1+1이라 샀다고 했다.


"여보 또미가 집으로 오면서 자기 마음이 딸기상자래."

"응? 무슨 뜻이야?

"이 상자처럼 지금 또미 마음이 웃고 있대."

"RC카 때문에?"

"응. 아빠랑 놀이터에서 놀아서 정말 기분 좋다 이렇게 말했어."


라고 말하는 남편의 얼굴은 뿌듯함으로 충만해 보였다. 오랜만에 아들이 아빠와 놀이터에서 놀아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남편은 또미가 10살이 되면서 놀이터에서 정중히 퇴출된 것과 같았다. 예전에 남편은 거의 매일 아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을 즐겼다. 남편이 놀이터에 나가면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남편 주위로 몰려들었다. 남편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거나 긴 줄넘기, 공놀이를 하면서 아들과 놀아주고 싶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빠 이제 놀이터에 안 나오시면 좋겠어요."

"왜?"

"아빠가 놀이터에 오면 애들이 나랑 안 놀고 아빠랑 놀아요."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빠가 놀이터에 나가면 아이들은 아빠와 놀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 아들은 아빠와 놀지 않았다. 결국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들만 소외되고 만 것이다. 남편과 걷다가 아이들을 만나면 '아저씨 또미 언제 나와요?"라고 묻는 아이는 없었다. 하지만 아들과 걷다가 만난 아이들이 '또미야 너네 아빠 언제 와?"라고 묻는 일은 많았다. 아들을 위해 놀이터에 나갔는데 역으로 아들이 소외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남편은 놀이터에 나가지 않았다. 그 시간을 나와 산책을 하면서 보내던 중에 아들에게 모처럼 극찬을 들은 것이다. 아마 남편의 마음도 딸기 상자처럼 웃고 있을 것이다.


남편과 아들만큼이나 길냥이의 마음도 딸기 상자가 된 것 같았다. 남편이 찍은 영상에는 RC카에 진심인 길냥이들이 있었다. 남편은 TNR사건 이후로 길냥이를 측은하게 여기게 되었다. 남편은 우리 동네에 유독 캣맘이 많으므로 사료를 챙기기보다는 놀이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길냥이가 RC카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남편은 RC카를 갖고 나가면 길냥이 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길냥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말 RC카를 좋아한다. 길냥이와 놀아주는 동안 남편은 길냥이에게 뭔가 해줬다는 생각에 본인이 더 위안을 받는 것 같았다. 반려동물이나 고양이에게 차갑던 남편의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RC카가 신기한 길냥이
RC카에 진심인 길냥이


꼬마 길냥이도 RC카에 시선 뺏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길냥이들은 RC카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겁먹은 것 아닐까 걱정했는데 길냥이들은 잠시 뒷걸음치다가도 다시 다가왔다. RC카가 가는 대로 길냥이들이 따라오는 경우도 많았다. 길냥이에게 RC카가 재미있는 괴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남편과 아들은 자주 놀이터에서 RC카 경주를 하면서 놀고 있다. 그리고 길냥이 존을 잊지 않고 들른다. 남편의 마음을 아는지 길냥이들은 화단 나무 사이에서 RC카 공연을 흔쾌히 관람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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